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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고대올림픽 종목에 대한 고찰 : 5. 종합경기 - 5종경기(Pentathlon)

 

 

 

글/ 윤동일 (국방부)

 

 

한 사람이 이질적인 5가지 종목을 겨루어 총득점으로 등수를 가리는 경기
* 현대 : 승마(장애물) - 펜싱(에뻬) - 수영(200m 자유형) - 사격(10m 공기권총) - 달리기(3km 크로스컨트리)
* 고대 : 단거리 달리기(Stadion) - 멀리뛰기(Halma) - 원반던지기(Diaulos) - 창던지기(Akon) - 레슬링(Pale) 

 

5종경기를 뜻하는 영어의 '펜타슬론'(pentathlon)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숫자 '5'를 의미하는 'penta-'와 '경기'를 나타내는 '-athlon'이 합쳐진 말이다. ‘고대(ancient)’ 5종경기와 구분하기 위해 ‘근대(modern)’ 5종경기로 부른다. 기원전 708년, 제18회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단거리 달리기(Stadion), 멀리뛰기(Halma), 원반던지기(Diaulos), 창던지기(Akon), 레슬링(Pale) 순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5종경기도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아르고호(Argo號) 원정대’로 알려진 그리스 신화와 관련이 있다. ‘아르고나우타이(Argonautes)’는 고대 그리스 전설에서 영웅 이아손과 함께 황금양모를 구하기 위해 콜키스로 떠난 50명의 영웅들이 펼친 모험담을 말한다. 이들이 탄 배의 이름인 ‘아르고’에서 유래하여 '아르고호의 선원들'이란 뜻으로 아르고나우타이라 불렀다. 신화에서는 이들을 ‘아르고 원정대’로 소개한 것인데 당시 50명 원정대를 이끈 선장 이아손(Iason)은 유달리 레슬링에 강한 팰레우스(Peleus)가 다른 종목은 약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나머지 4종목을 추가해 새로운 종목을 고안했고, 이것이 5종경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달리기를 비롯한 다섯 종목의 경기가 가지는 전투적 속성이다. 이 경기는 한 마디로 고대 전사들이 전장에서 생사를 건 전투에 필요한 핵심 전투기술을 모두 혼합 편성한 종목이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종목들을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이다. 모름지기 전사라면 기본적으로 적 보다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달리기에 능해야 하고, 이동 간 자연 또는 인공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하며 강을 만나면 가장 무거운 방패는 반대편에 힘껏 던져 강을 극복해야만 했다. 또한 적을 만나면 원거리에서 창을 던져 무찌를 수 있어야 하고, 적과 근접해서는 레슬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고대 5종경기는 마치 오늘날 배치 전 받는 기초 군사훈련에서 시작해 부대별로 가장 유능한 전투원을 선발하는 경연대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 굳이 고대의 전장에서만 적용되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전사들이 전장에서 필요한 대표적인 전투기술을 함양할 목적으로 고안되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평시에 전시를 대비한 준비상태를 점검하는 핵심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달리기를 제외하고는 5종경기를 가장 먼저 정식종목으로 채택(BC708년)했고, 종목 자체의 조기 교육의 중요성과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장차 도시국가의 안위와 번영을 책임지게 될 소년들이 참가하는 종목에도 가장 먼저(BC638년) 거행했다. 경기방식은 위에 언급한 순서대로 스타디온으로부터 창던지기까지 네 종목의 종합점수가 가장 좋은 두 선수를 선발해 마지막은 레슬링 경기로 승부를 결정했다. 이런 관점에서 다섯 종목 가운데 레슬링을 가장 중시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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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은‘춤추는 고대 5종경기 선수들(A troop of dancing pentathletes)’이란 제목의 토기 그림이다. 기원전 532년∼52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에는 왼쪽에서부터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선수들이 춤추며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나 달리기와 레슬링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2. 오른쪽의 그림은‘고대 5종경기 선수들’을 묘사한 또 다른 기록으로 가장 우측에서부터 달리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레슬링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나, 여기선 멀리뛰기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현대의 올림픽에도 고대 5종경기와 유사한 경기가 있다. ‘근대 5종경기’는 1912년부터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종목이다. 물론 오늘날 7종경기나 10종경기 등 유사한 경기가 있지만 가장 역사가 깊은 근대 5종경기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시작은 개인전이었으나 1952년 이후부터는 단체전으로 행해졌으며 올림픽 경기에 여자 종목은 없다.(1964∼80년 기간 중에는 여자 개인전 종목이 개최되기도 했음.) 고대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근대 5종경기의 유래는 철저하게 전장상황을 가정한 종목이었는데 프랑스 장교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쿠베르탱(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이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령(傳令, 부대 간 명령이나 중요한 정보 등을 전달하는 직책)에게 필요했던 전투기술을 기초로 5종목을 고안한 것이 시초이다. 전령은 무전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통신의 주 수단으로 운용되었으며 신호체계와 함께 전장의 의사소통을 담당하여 전투의 승패를 좌우했다.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마라톤은 실재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있었던 유명한 전투(테르모필레전투로 최근 화제가 되었었던 영화 ‘300’의 시대적 배경이었음.)에서 유래했는데 중요한 메시지를 들고 마라톤 평원으로부터 아테네 원로원까지 달렸던 이가 당시 아테네군에서 가장 빠른 전령이었었다.

 

이밖에도 전쟁의 역사 가운데 전령에 얽힌 사례는 무수히 많다. 칭기즈칸도 실시간 정보공유와 명령전달을 위해 원거리 정보부대와 역참(驛站, 말을 갈아타는 곳)을 두고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통로(초원길, Steppe Road)를 별도로 보장하기도 했다. 또한 나폴레옹 역시 전령의 중요성을 피력했는데 전령은 전투에서 피아 모두에게 핵심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긴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에는 반드시 복수로 운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적시에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명석한 상황판단 능력을 갖춘 이들 가운데 다음의 전장상황을 가정한 다섯 가지 전투능력이 요구되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발이 빨라야 했는데 특별히 요철(凹凸)이 심한 야지를 횡단하는 능력(3km 크로스컨트리)이 우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전령의 임무수행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말을 지급했기 때문에 말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 야지에서의 승마기술(마장마술, 장애물경기)이 요구되었다. 또한 특별한 상황을 가정했는데 물을 만나면 지체 없이 수영으로 건널 수 있어야 하고(자유형 200m), 이동 중에 적을 만나면 상황에 따라 권총(10m 공기권총)으로 적을 사살하거나 칼[각주:1](펜싱 에뻬)로 적을 무찔러야만 한다.

 

종합해 보면, 근대 5종경기는 전장이동기술 3종목(달리기, 승마, 수영)과 근접전투기술 2종목(권총, 펜싱)을 혼합편성한 경기라 할 수 있다. 5종경기 말고도 전쟁에 필요한 기술을 함양하기 위해 고안된 종목들은 이후에도 꾸준히 고안되었는데 특히, 군에서 처음 시작한 스포츠 종목의 기술을 활용해 독자적인 전법으로 발전시킨 사례도 많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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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은 근대5종경기에서 행해지는 종목들  (출처: 천지일보)

2,3 오른쪽은 올림픽개최를 기념해 제작된 기념우표에 새겨진 근대5종경기 모습 

 

 

 

ⓒ 스포츠둥지

 

 

 

 

 

  1. 칼은 역사적으로 인류의 선조들이 만든 가장 오랜 사냥도구였지만 전쟁의 역사나 군사적 관점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적과의 마지막 백병전적에는 물론이고, 적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해 기도비닉<企圖祕匿>을 유지한 채, 살상할 수 있는 무성<無聲>무기로 일반적으로는 총에 비해 위력이 떨어지나 적 지역에서 벌어지는 특수작전이나 침투작전과 같이 상황에 따라서는 총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매우 위협적인 무기이다. 따라서 칼은 시공을 초월해 동·서양의 모든 군대에서 편제무기로 채택했고, 살상과 사거리 혁명을 달성한 화약이 등장한 이후에도 그리고 최첨단의 전투기술과 능력이 요구되는 작금은 물론, 미래에도 당분간은 유용한 무기체계로 간주될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