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국방부)
격투경기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 전투(승패를 좌우하는 최종 단계의 전투 행위)와 직결되는 스포츠로 가장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종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실전에서는 대적한 개인 간의 승패가 전투의 승패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물론 개인의 승리가 전체 전투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고대의 근육전쟁(Muscle War)의 전투양상 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하여 일단 개인 간의 결투에서 이긴다는 것은 전체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격투경기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개인이 휴대한 무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방이 서로 무기 없이 맨손으로 하는 유형으로 이들은 전투의 백병전(白兵戰, Dog Fighting) 상황을 가정한 종목들이다.
전자에는 검도나 펜싱과 같은 경기가 있다면 후자에는 레슬링, 권투, 유도, 태권도 등 맨손의 격술(擊術)이 있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당시의 백병전을 흉내 낸 3종류의 시합이 있었는데 모두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붙잡은 상대를 힘과 기술을 이용해 땅바닥에 매치거나 밀어붙이는 레슬링과 상대를 오로지 주먹에 의한 가격만으로 굴복시키는 권투, 그리고 두 종목의 경기방식을 혼합한 판크라티온이 그것이다. 지난 연재(레슬링)에 이어서 권투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 권투(Boxing, Pugilism)
글러브를 끼고 펀치만을 사용해 상대방의 상반신 전면과 측면만을 공격하는 격투 스포츠 |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손과 발을 사용하며, 태어나 두 발로 서면서부터는 맨손이나 주먹을 쥐고 또는 무기를 들고 생존과 투쟁의 본능을 표출해왔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다. 권투를 라틴어로 ‘주먹(Pugnus)’에서 파생된 푸질리즘(Pugilism)이라 하고, 영어로는 ‘주먹을 쥐면 네모난 형태’가 된다하여 복싱(Boxing)이라 했다. 경기 중 클린치 등으로 중단된 경기를 재개하기 위해 심판이 외치는 구령인 ‘복스’도 ‘상대와 주먹으로 싸운다.’는 의미를 가진다.
권투 역시 신화와 관련이 있다. 포키스 섬에 살았던 한 권투선수(Phorbas)가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강제로 자신과 권투 시합을 하도록 했는데 이기는 자가 없었다. 결국 아폴로(Apollo)가 그의 권투경기에 응했고, 이 오만한 권투선수를 죽여 버렸다. 이 일로 인해 아폴로는 권투의 창시자로 칭송받았다. 전장에서는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투구 없이 전투해야 할 최악의 상황도 있다. 이 때 적의 타격을 막아내거나 또는 참아내는 능력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따라서 이런 전장상황을 상정하여 고안된 종목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의 그리스 토기에 그려진 경기 모습을 토대로 좀 더 실전적인 전투상황을 상상해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아래의 사진(코피를 흘리는 장면을 그릴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가 매우 인상적임)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선수들은 모두 양 팔을 벌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경기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공통적으로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은 뒤로 뺀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이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 보다 공격적인 현대의 스타일과는 약간 다르다. 이렇게 한 데에는 다분히 당시의 전쟁양상에서 답을 찾아 볼 수 있다. 당시의 전투원들은 왼손에 방패 오른손에 창이나 칼을 들고 싸웠기 때문에 권투도 이 연장선에서 왼손은 방어용으로 사용해 앞에 내밀어 상대의 공격을 방해하거나 막는 용도로 활용하고, 오른손은 뒤로 빼서 기회를 포착하는 즉시 가격할 수 있도록 공격용으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권투처럼 역동적이지 못하고, 다소 경직된 자세를 고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마지막 사진은 레슬링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격투경기의 승부를 결정하는 장면인데 패배를 인정하는 일반이 검지나 중지를 들어 심판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심판은 수세의 일방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 공세행동을 저지시키고 있다.
1,2,3. 고대의 권투경기(히만테스를 감고, 가격에 의해 코피를 흘리는 것까지 묘사하고 있다.)
4. 고대의 격투스포츠애서 승부를 결정했던 방법(손가락을 들어 패배를 인정하고, 심판은 나뭇가지로 공자를 제지하고 있다. 이 사진은 일반적으로 판크라티온의 장면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임.)
한편, 또 다른 특징이라면 위의 사진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아래 기원전의 복서를 묘사한 청동상에서 볼 수 있듯이 권투선수들은 자신들의 손 둘레에 ‘히만테스(Himantes)’로 불리는 가죽 끈을 감았다. 이것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약 2미터 길이의 줄로 엄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를 감싸고, 손바닥과 손등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서 손목이나 팔뚝의 상부에 묶어 고정시켰다.
히만테스의 용도는 선수들의 손을 보호하고, 손목을 강화하며 손가락을 견고하게 해 주었으며 안쪽은 양털을 덧대고, 바깥은 단단한 가죽을 이중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타격의 효과를 더욱 배가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히만테스를 감는 일은 마지막의 그림처럼 매우 복잡하고 시간을 요하는 작업으로 기원전 4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미 감아 놓은 일종의 완제품(‘Oxeis Himantes’라 불렀는데 단단한 가죽 끈과 양털의 내피로 구성되었다.)으로 대체되었으며 로마시대 후기에 들어서자 마지막 사진(영화 스파르타쿠스의 한 장면)에 보듯이 납이나 쇳조각으로 만든 스파이크(뾰족한 침이나 못)가 달린 카에스투스(Caestus)를 활용함으로써 펀치의 파괴력을 극대화하였다. 로마인들은 이것을 노예들에게 착용시켜 싸우게 함으로써 선혈이 그대로 튀는 처참한 광경을 즐겼다. 이런 비인도적인 경기방식은 이후 밀비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와 콘스탄티누스가 이끄는 동·서로마의 격돌(Battle of Milvian Bridge)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나 히만테스는 오늘날의 권투 글러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경기의 승부는 앞서 레슬링에서와 마찬가지로 패배를 인정하거나 기권의 의사를 손가락으로 표현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땅에 쓰러져 의식이 없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만 시합이 장시간 지속될 경우 추첨에 의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상대의 펀치를 피하지 않고 오랫동안 견디는 경기방식(Klimax)을 도입했으며 경기는 야외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경기시간이 매우 중요했는데 특히, 상대가 태양을 마주보게 한다면 상대적으로 유리해 진다.(상대가 눈을 뜨지 못하도록 하거나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음.) 이렇게 스포츠를 통해 익힌 실용적 경험(태양을 등지고 상대와 대적하려는 습관)은 실제 전장에서 고대 전사들의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결투로부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팬저 전차군단을 지휘했던 ‘사막의 여우’ 롬멜장군의 연승 노하우가 되기도 했다.
1,2,3. 기원전 225년에 제작한 복서 청동상(Seated Boxer)4. 히만테스를 감는 권투선수
5. 로마의 카에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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