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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고대올림픽 종목에 대한 고찰 : 4. 격투경기(3) - 판크라티온

 

 

 

글/ 윤동일 (국방부)

 

               격투경기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 전투(승패를 좌우하는 최종 단계의 전투 행위)와 직결되는 스포츠로 가장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종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실전에서는 대적한 개인 간의 승패가 전투의 승패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물론 개인의 승리가 전체 전투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고대의 근육전쟁(Muscle War)의 전투양상 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하여 일단 개인 간의 결투에서 이긴다는 것은 전체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격투경기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개인이 휴대한 무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방이 서로 무기 없이 맨손으로 하는 유형으로 이들은 전투의 백병전(白兵戰, Dog Fighting) 상황을 가정한 종목들이다. 전자에는 검도나 펜싱과 같은 경기가 있다면 후자에는 레슬링, 권투, 유도, 태권도 등 맨손의 격술(擊術)이 있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당시의 백병전을 흉내 낸 3종류의 시합이 있었는데 모두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붙잡은 상대를 힘과 기술을 이용해 땅바닥에 매치거나 밀어붙이는 레슬링과 상대를 오로지 주먹에 의한 가격만으로 굴복시키는 권투, 그리고 두 종목의 경기방식을 혼합한 판크라티온이 그것이다. 지난 연재(레슬링-권투)에 이어서 판크라티온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 판크라티온(Pankaration)

 

종합격투기(MMA ; Mixed Martial Arts) : 최소한의 규칙을 가지면서 맨몸으로 싸우는 격투 스포츠로 타격, 관절기, 던지기 등 기술의 제한 없이 급소 가격 등 생명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치명적인 공격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술을 사용하는 경기

 

조금 유치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레슬링과 권투 선수가 경기를 한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 마치 1979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일본의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의 격돌처럼 한 때는 이런 경기 즉, 서로 다른 종류의 무술 간의 대결이란 의미로 이종(異種) 격투기라 불렀는데 남아있는 가장 오랜 기록은 1887년이 처음이며 이후에도 수차례의 경기가 있었으나 가공할 원거리 타격으로 광대뼈가 골절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잡기에 이은 연속기술을 당해낼 수 없었다.

 

판크라티온은 앞에 소개한 두 격투경기(레슬링과 권투)가 기원전 688년에 열린 제23회 대회부터 행해졌는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기원전 648년에 열린 제33회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당시 이 종목에 대하여 조회가 깊었던 플라톤에 의하면 판크라티온은 “불완전한 레슬링과 불완전한 권투를 결합한 경기”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일반 대중에게는 고대 올림픽 종목 가운데 ‘가장 멋진 경기’로 인식되었으며 장군들에게는 ‘전사들을 훈련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종목’으로 인식되었다. 판크라티온은 어원상 ‘모두’를 의미하는 ‘pan’과 ‘휘어잡다’를 뜻하는 ‘kratew’를 합친 말로 잡기나 조르기 등이 허용된 가장 거친 권투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경기 규칙은 아래 사진에 보듯이 한 마디로 레슬링에서 사용된 잡기나 조르기와 같은 접촉기술과 권투에서 사용된 원거리 타격기술이 모두 허용되었는데 유일하게 금지된 것은 ‘이빨’이나 ‘손톱’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상대를 ‘깨물거나’ 상대의 ‘눈을 찌르는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모든 행위가 허용되었으며 심지어 상대 선수의 성기를 잡거나 공격하는 행위까지도 가능했다.

 

판크라티온은 경기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해 행해졌는데 선수들이 선 채로 경기를 진행하는 방식(아노<Ano> 판크라티온)과 땅바닥에 떨어진 뒤에도 계속 시합을 진행하는 방식(카토<Kato> 판크라티온)이 있었으나 후자가 훨씬 더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 판크라티온에서 타격의 강도는 권투에 비해 보다는 덜 고통스러웠는데 그 이유는 사진에 등장한 모든 선수들이 권투의 히만테스(Himantes)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2. 아노 판크라티온으로 잡기에 이은 타격장면 

   3. 그라운드 기술로 상대를 관절기와 타격으로 제압하는 장면
4. 판크라티온에 금지된 반칙(눈 찌르기)을 하는 장면과 이를 본 심판이 나뭇가지를 들어 제재하는 장면

 

 

오늘날 판크라티온과 가장 유사한 종목을 꼽으라면 단연 모두에 언급한 바 있는 ‘종합격투기(MMA ; Mixed Martial Arts)’일 것이다. 격투스포츠는 전쟁이 형상화 된 고대 올림픽 종목 가운데 최종의 승부를 결정하는 전투형태인 백병전 상황을 상정한 실용성에서 출발한 것으로 판크라티온은 후기에 들어 오락적 요소가 더욱 가미되면서 대표적인 올림픽 종목이 되었다. 다른 격투스포츠와 다른 점은 대부분의 격투기들이 손 또는 발(足技) 등을 이용해 상대를 타격하거나 관절기 또는 던지기 중 일부 기술만을 수용하고, 나머지 기술은 금지했다. 그러나 종합격투기는 급소 가격으로 생명에 지장이 없다면 거의 모든 기술이 허용되었다는 점에서 전투적 특성은 다른 격투 스포츠를 능가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백병전투에 요구되는 기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모든 격투경기가 그러했지만 판크라티온은 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도 했는데 체급경기의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특히, 우승자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커다란 체구의 소유자였다는 점에서 초인간인적 이미지로 인식되었으며 나아가 종종 신(神)에 비유되어 대중적인 칭송과 지지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고대 올림픽에 여성들은 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올림픽을 통해 건장한 신체와 정신을 갖춘 미래 지도자나 전사 등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적 차원에서 소년경기가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년경기는 기원전 638년, 제36회 대회부터 네 종목이 행해졌는데 모든 스포츠의 기본인 달리기와 장차 전쟁터에서 필요한 종합전투기술을 겨루는 5종경기가 있었고, 여기에 격투경기도 두 종목이나 포함되어 있었음은 당시 지중해 도시국가들이 생존을 위해 힘을 키웠던 당시 정황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랍지 않다. 종목별로는 5종경기(BC636년/36회)에 이어 단거리달리기인 스타디온과 레슬링(BC632년/37회) 그리고 권투(BC616년/41회) 경기의 순으로 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행해졌다. 물론 규칙도 없고, 타 경기에 비해 과격한 판크라티온은 소년경기로 부적절하여 제외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200년<제145회 대회>에 단 한 차례만 거행되었다.)

 

 

1. 현대의 종합격투기(MMA) 성격을 표현하는 포스터     

3. 최배달(본명 최영의)의 일생을 그린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한 장면(현재 세계 종합격투기는 미국의 UFC와 일본에서 처음 시작한 PrideFC로 대변될 수 있겠지만, 1950년대에 이미 52마리의 황소와 겨루고, 일본,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각종 무술 강자들을 차례로 굴복시키며 ‘극진공수도’를 창시한 한국인 최배달에 의해 평정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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