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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고대올림픽 종목에 대한 고찰 : 6. 경마와 전차경주

 

 

 

글/ 윤동일 (국방부)

 

         예로부터 동물은 인류에게 귀중한 식량과 피복 등의 원천임은 물론이고, 농작물 재배를 위해 토지를 일구며 먼 거리를 이동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등 인류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류의 동반자였다.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전장에서 적 보다 먼저 상대적 우위를 달성해 결정적인 시기와 장소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이를 지속 유지하여 승리에 보다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는 전체 과정에서 동물은 인간의 약점을 보강하고,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고대의 인도, 아프리카, 지중해 일대를 호령하며 공포와 전율의 대상이었던 코끼리군(象軍)에서부터 단순한 연락을 위한 비둘기(전서구<傳書鳩>라 함.)부대 그리고 전장에서 전상자 구호와 통신을 담당했던 군견(軍犬)들이 2차 대전에선 전차를 파괴하는 자살특공대로 운용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화우(火牛, 소의 뿔에 나뭇가지를 매고 불을 붙여 공성이나 적진에 돌진할 경우 활용한 중국의 전법)’나 이집트 공격의 최선봉에 섰던 ‘고양이’, 최근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지뢰 탐지용 ‘주머니쥐’와 산악에서 물자운반용 ‘낙타’에 이르기까지 군인인 필자가 생각해도 그 다양함은 놀라울 정도다.

 

전쟁에 이용된 가운데 가장 으뜸은 단연 ‘말(馬)’이다. 악천후에도 생존을 위해 무거운 군장을 매고 험지(險地)·악천후와 싸우며 쉬지 않고 걸어야만 하는 도보(徒步) 위주의 전장에서 말 탄 ‘기병(騎兵)’의 등장은 전쟁양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했었다. 한편,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거행된 올림픽의 정식 종목들 가운데 동물이 등장하는 종목은 ‘승마경기’가 유일하다. 이 종목은 말 조련에 필요한 기술 정도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결정되었던 과거의 전쟁양상과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말과 기수가 혼연일체가 되어 달리고, 도약하며 약속된 행동을 표현하는 조련술은 고도로 숙련되고, 절제된 행동이 요구되는 전쟁터에서 기병의 역할과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군대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올림픽에 행해진 종목들은 말을 타거나 말이 끄는 전차를 몰아 누가 빠른지를 겨루는 경기였지만 근대에 들어서는 장애물을 넘거나(1912년 최초로 시행) 규정된 동작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마장마술(馬場馬術, 1928년부터 시행) 그리고 이를 혼성한 종합마술 경기가 추가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 승마가 보급된 배경 역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였다. 전쟁에 동원된 군마(軍馬)를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조련할 필요가 증대되면서 기병들은 평상시 조련을 통해 실제 전투에서 필요한 기도비닉을 유지[각주:1]하고, 적군을 궁지로 몰아 개와 협공하거나 발굽으로 적군을 깔아뭉개고, 심지어는 이빨로 물어뜯는 직접적인 위해행위도 가능해졌다.

 

 

 

가. 경마(Keles, Horseback Race) 

 

기수와 말이 일정한 구간을 달려서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순위를 겨루는 경기
* 고대에는 정식 종목이었으나, 현대에는 스포츠가 아니라 돈을 걸고 우승마를 맞추는 레저임.  

 

고대의 경마(乘馬)는 오늘날과 외형적으로 크게 달랐는데 특히, 말을 타거나 부리는 핵심 마구(馬具)에서 차이가 많았다. 기수가 말 등에 올라 걸터앉는 안장(鞍裝, saddle)이 없었고, 말을 탈 때 발을 걸어 말 등에 오르거나 말 위에서 균형을 유지[각주:2]하는 용도의 등자(鐙子, stirrup)가 없었는데 한마디로 특별한 장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래 사진에 보듯이 말을 다루기 위해 입에 물린 재갈(bit)이 전부였다. 때문에 경기방식은 상당히 위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말 등에 올라 경주를 위해 빨리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를 상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기수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 말 위에서 균형을 잃고, 군데군데 고르지 않은 지면은 더욱 위험성을 증폭시켜 낙마(落馬)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경마는 오늘날과 달리 고대 올림픽에서 가장 위험한 경기로 인식되었고, 실제 경기 도중 부상자 발생은 물론 심지어 사망자도 속출하였다. 참고로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말을 전쟁에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등자(鐙子)는 중세에 들어서야 비로소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중장보병의 밀집대형에 의존했던 그리스-마케도니아-로마제국의 군대에서 기병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잘 훈련된 보병이 있어 전쟁에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었던 이들은 기병을 주력으로 하는 적을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로마군은 후일 훈족에 쫓겨난 고트 족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1                                     2

1. 토기에 그려진 경마경기 모습으로 재갈 외 특별한 마구(馬具)는 보이지 않는다.
2. 전차경기장(hippodrome)과 영화로 재현된 전차경주의 모습

 

 

 

나. 전차경주(Hippikos Agon, Chariot Race)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일정한 구간을 달려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순위를 겨루는 경기
* 고대에는 정식 종목이었으나, 현대에는 레크리에이션으로 남아 있음.

 

고대 그리스에선 말을 소유하고 있음은 상당한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있음을 의미했는데 전차는 더욱 그러했기 때문에 말과 전차를 소유한 소수 계층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직접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고, 영화 등을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차경기를 위해 일종의 팀을 결성했다. 전차경주는 일반적으로 말과 전차를 가진 소유주와 직접 경기에 참가하는 기수 그리고 말의 훈련을 담당하는 조련사와 말·전차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전문 관리인들이 함께 참가하는 단체경기로 속도 뿐 아니라, 고도의 전차 조종술이 필요하며 승리를 위한 전략과 전술이 요구되는 경기였다.

 

이런 경기방식을 종합해 볼 때, 마치 현대의 자동차 경주대회를 연상케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고대의 전차경기는 가장 오래된 ‘포뮬러 원(Formula One)’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경기는 전차를 끄는 말의 숫자에 따라 두 종목으로 구분했는데 아래 첫 번째 사진처럼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하는 경주(Tethrippon, 4-horse chariot race)를 먼저 시작했고 이후 40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하는 경주(Synoris, 2-horse chariot race)를 고안했다. 경기방식은 경주와 유사했으나 전자는 앞서 소개한 경기장(Hippodrome)을 모두 12바퀴를 돌아 약 15km의 거리를 달렸고, 후자는 그보다는 짧은 8바퀴를 돌아 약 10km의 거리를 달렸다. 후기에 들어 전차를 조종하는 기수는 전투복장과 무장을 그대로 착용했으며 전차에 횃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달리기처럼 전차계주도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전차경기는 근대와 현대의 올림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래 마지막 사진처럼 자전거와 사람이 끄는 전차경기나 기마전 형태의 레크리에이션의 형태로 남아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직의 전투기술을 반영한 경기로 전술적인 노하우가 필요한 종목은 기마전이라 생각한다. 고대 올림픽의 역사에서 말이 등장하는 종목(말을 타고 또는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일정 구간을 달려 승자를 겨루는 종목)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다른 종목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편인데 레슬링과 복싱(BC688년)의 뒤를 이어 4두전차경주가 처음 개최(BC680년, 제25회)되었고, 2두전차경주는 판크라티온과 같은 해(BC648년, 제33회)에 행해졌으며 경마는 다른 종목에 비해 400년이 지난 후(BC480년, 제65회)에야 비로소 처음 선보였다.

 

 3                                                                      4

3. 토기에 그려진 4두 전차경주와 2두 전차경주 

4. 현대의 전차경기(자전거가 끄는 전차 경기와 기마전) 모습

 

 

 

 

ⓒ 스포츠둥지

 

 

 

 

  1.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몽고군의 군마(軍馬)는 서양 말에 비하면 볼품없는 조랑말로 보일지 모르나, 한 연구에 의하면, 빠르지는 않지만 지구력이 좋아 장기지구전 또는 장거리 원정에 유리하고, 혹독하고 독특한 양마법(養馬法)으로 한 번 전투에 나가 10일간 주·야 연속의 매복 작전에도 절대 울지 않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2. 흔히들 칭기즈칸의 업적을 평가하는 많은 관점 가운데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을 중시하고, 조련사나 대장장이도 과감히 요직에 등용하는 능력위주 채용(Merit System)을 높게 평가한다. 당시 개발한 몽고군의 등자는 단순히 말 등에 오를 때 발을 걸기 위한 것에서 나아가 발이 닿는 부분을 더 넓고 평평하게 만듦으로써 마상전투(말의 등 위에서 활을 쏘거나, 칼을 사용)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특히, 이 새로운 등자는 몽고군의 조랑말이 네 발을 사용해 비교적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던 장점과 결합해, 유럽의 기사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비법(도망가는 척 적을 유인한 후, 말에서 몸을 돌려 활을 조준 사격했는데 그 정확도가 매우 높았다.)을 개발해 실전에 적용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