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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현대 스포츠 문화의 서구적 기원

  

                                                               글 / 김홍식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부 조교수)



1. 서구 기원의 현대스포츠(modern sport)는 현대 신체문화의 주조(主潮)를 이루고 있다.
서구 기원의 현대스포츠가 주조를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 전통의 신체문화는 두 가지 양상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하나는 쇠퇴 또는 소멸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화된 경기로의 변모이다.
태권도처럼 서구 기원의 현대스포츠와 같은 형식으로 변모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통의 신체문화, 신체기법은 책 속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는 우리 일상이 서구화된 또 하나의 상징적 사례이다.

우리 신체문화의 서구 스포츠화는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같은
고통과 불쾌를 수반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의 전통적 신체문화가 오랜 동안
우리의 삶과 호흡을 같이 하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잘 어울릴 가능성도 크다
.

따라서 우리 전통의 신체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는 자연스럽고 당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구기원의 현대스포츠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재 삶이 상당 부분 서구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
 

2. 서구기원의 현대스포츠는 그리스적 전통(Hellenism)과 기독교적 전통(Hebraism)
교차하면서 나타난 역사적 산물
이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적 전통은 여러모로 음미할 만하다.
특히 서구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재해석되고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어 온 그리스 신화가 그러하다.

아틀라스(Atlas)는 제우스에게 저항했던 거인(Titan) 족의 일원이다.
거인 족의 패배와 함께 아틀라스는 하늘/지구를 짊어지는 벌을 받는다.
아틀라스의 힘이 엄청나게 세긴 했나 보다. 그 후 아틀라스는 ‘힘센’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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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척추는 척추 중 유일하게 고유 명이 있는 데, 그 이름이 바로 ‘아틀라스’다
.
지구와 같은 두개골을 떠받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외에도 아틀라스는 세계 지도를
지칭하기도 한다.

아킬레스(Achilles)는 호머(Homeros)의 대서사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아킬레스는 ‘아킬레스건’에서 알 수 있듯이 해부학의 용어이기도 하다
.
또한 “나의 아킬레스건은 정에 약하다는 것이다”와 같은 표현처럼 치명적인 약점,
또는 유일한 약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오디세우스(Odysseus)가 겪은 고난의 귀향 여정이다.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의미하는 고유 명사인 오디세이아는 ‘여정(旅程)’이라는 의미의 일반 명사로
사용된다. 클래식 음악 전문 방송 프로그램 “클래식 오디세이”가 있듯이 그 말은 ‘특별한 여정’이라는
문학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틀라스


3. 그리스 기원의 많은 용어들이 역사, 과학, 문학 등의 맥락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사용되고 있다. 용어의 그리스적 기원, 전통에 있어 스포츠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올림픽경기대회(Modern Olympics)는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명칭을 차용하였다.
스포츠역사학자 거트만(Guttmann, Allen)의 지적처럼 현재의 올림픽이 고대의 제전경기에 비하여 세속화되었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체조로 번역되는 짐나스틱스(gymnastics)가 ‘나체의’라는 의미의 짐노스(gymnos)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은 통설이다. 신체의 교육(gymnastikē)이 이루어진 짐나지움(gymnasium) 긴 회랑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로서 현재 체육관으로 번역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경주(競走, stadion)가 벌어진 곳이 스타디움(stadium)이고, 따라서 육상경기 종목이 주로 이루어지는 현대의 종합경기장이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올림피아의 스타지온 경기장                          
올림피아의 짐나지움


현대 레슬링의 경기 종목에는 그레코로만형(Greco-Roman)과 자유형(Free style)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두 방식의 차이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어의로 보면 그레코로만형
(Greco-Roman)은 그리스-로마식일 텐데, ‘고전형’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또한 자유형은, 고전형과 대비하여 ‘현대형’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사이클경기장은 벨로드롬(velodrome)의 번한(飜韓)이다. 벨로(velo)라는 말이 새(bird)를
의미하는데 벨로시티(velocity)가 속도를 의미하는 물리학 용어로 사용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동물 중에서 새가 가장 빠르니 벨로시티는 그렇듯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벨로드롬은 ‘속도(경쟁)장’ 쯤이 되지 않을까.

                                                                 신화 속의 레슬링

이렇듯 그리스적 전통은 스포츠 영역뿐만 아니라 의식주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원인의 핵심에는 고대의 로마제국과
근대의 서구열강이 자리하고 있다. 고대의 로마인은 그리스적 전통과 기독교적 전통을
융합시켜
유럽 문화의 원형을 만들었고 라틴어(Latin)로 표현, 전파시켰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근대의 서구열강은 식민통치를 통하여 그 문화를 세계로 확산시켰다.

로마제국의 멸망에 따라 라틴어는 일상에서 사라졌지만 문예 활동의 언어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신체활동에 관한 학문이라는 의미의 ‘키네지올로지(kinesiology)’는 우리의 ‘체육학’ 쯤 될 것인데, 키네시스(kinesis=movement)와 로지(logy=science)의 합성어이다.
체육학의 또 다른 표현으로 사용되는 킨앤트로폴로지(kinanthropology) 역시 움직임(kinesis), 인간(anthropo), 학문(logy)의 합성이다. 최근에 새로이 등장하는 용어조차 그리스어, 라틴어의 차용인 셈이다.


4.
위와 같은 경향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한자로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경향과 비슷하다.
신체(身體), 교육(敎育), 체육(體育), 운동(運動), 경기(競技), 유희(遊戱) 등과 같이 한자로 만든 용어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도 한중일 삼국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동양 삼국의 경우 로마제국과 견줄 수 있는 한()나라가 있었음을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 체육 및 스포츠 영역의 실천과 연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많은 용어들이 서구에서
유래하고 있다. 긴장을 일으키는 두 가지의 의식이 등장한다. 하나는 우리의 신체 문화 전반이 서구의 문화제국주의에 점령되었다는 불쾌감과 함께 우리 고유, 전통의 신체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일상 전반이 서구화된 바와 같이 신체 문화 역시 그러하며, 따라서 그 추세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라는 의식이다.

어떤 의식, 어떤 방향이 합당할까? 결론은 누구나 말할 수 있듯이, 절충 또는 융합일 것이다.
극단은 명쾌할 수 있지만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수적(國粹的) 태도나 예속적(隸屬的) 태도
모두 한계가 있다. 우리의 현재 삶을 직시하고 무엇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길로 이끌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구 문화의 기축인 그리스적 전통과 기독교적 전통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신체 문화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하는 데 있어 유효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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