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국방부)
가. 원반던지기(Discus)
25미터의 원형의 구역 내에서 몸의 회전을 통한 원심력을 이용해 가장 멀리 던진 거리로 순위를 겨루는 경기 * 남자용 : 지름 219∼221mm, 무게 2kg이상 * 여자용 : 지름 180∼182mm, 무게 1kg이상 |
원반은 창던지기와 함께 가장 오랜 육상의 투척경기인데 그 유래는 매우 흥미롭다. 혹자는 사냥감을 잡기 위해 돌멩이 등을 던졌던 사냥행위에서 비롯하여 전쟁에서 대적한 적을 살상하기 위해 특병한 투사체(missile)를 던진 행위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그러나 이는 원반(Discus)의 생김새와 투척방법을 생각해 보면 그리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투척경기에 사용되는 공(球)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남자용 원반의 경우 직경은 22cm나 되고, 무게도 2kg 이상으로 공에 비해 훨씬 크고, 무거운데다 구조적으로도 둥글고, 납작하게 생겨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일반적인 던지기 방법으로는 원반을 멀리 보낼 수 없다. 따라서 공기의 저항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투척방법이 관건이 된다. 게다가 바람이 원반에 미치는 영향은 특정 상황에서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완전히 반대로 작용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적당한 맞바람은 오히려 원반의 비행에 양력(揚力, 비행체에 작용하는 공기저항이 비행체를 위로 밀어 올리는 힘)으로 작용해 비거리(飛距離)를 증가(초속 10미터의 바람은 비거리를 약 5미터 정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시켜주고, 뒤에서 부는 바람은 오히려 비거리를 감소(8%)시키기 때문에 투척 자세나 방법, 기술 등에 민감한 종목이라 할 수 있다. 원반의 생김새만 보면 고대 전사들을 보호하는 방호장비인 ‘방패’와 닮았다.
여기서 잠깐 방패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일반적으로 초기의 방패는 가슴이하의 신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초기의 방패는 몸길이 정도의 크기에 워낙 무거웠기 때문에 끈을 연결해 목둘레에 매달아 운반할 정도였다. 그러나 후대에 들어 발의 근육 모양을 본 따 만든 ‘정강이 보호대’를 도입하면서 방패의 크기는 훨씬 작고 둥근 형태로 변화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약 7세기에 이르러 당시 군의 핵심 밀집 전투대형인 팔랑스(Phalanx)의 주력군인 중갑보병(호프라이트, Hoplites)들에게 방패를 휴대하도록 했는데 이로부터 ‘호프론(Hoplon)’으로 불리는 둥근 방패가 보편화되었다. 아래 마지막 두 사진은 영화 300에 등장한 둥근 호프론 인데 영화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를 전쟁터로 보내는 왕비의 대사(“Return with your shield!, Or On it!”)에서 방패는 전사들의 생명을 보호함은 물론, 전사자와 부상자를 운반하는 들것으로도 활용됐기 때문에 전사들의 고귀한 명예를 상징했다. 실제로 전장에서 도주하는 경우, 무거운 방패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제일 먼저 유기하는 장비이기도 하다.
1. 고대 그리스의 원반과 그리스군의 방패(호프론)
2. 그리스와 페르시아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300에 등장한 그리스군의 방패 호프론
※ 이와 관련하여 달리기 종목에 대해 설명한 글 가운데 호프리토드로모스(Hoplitodromos)의 사진을 살펴보면 선수(중갑보병)들이 들고 있는 둥근 호프론과 정강이 보호대를 볼 수 있다.
만약 원반이 방패에서 유래한 것에 동의한다면, 원반던지기는 과연 어떤 전투상황을 상정한 것일까? 당시 멀리 떨어져 있는 적국을 공격하거나 이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는 서로 기습을 택하지 않는 한, 병력의 전개와 통제에 유리한 탁 트인 개활지에서 결정적인 전투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싸움터는 서로의 본국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장소로 정했고, 서로 적과의 접촉을 위해 먼 거리을 이동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강이나 하천은 아주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는데 이 때 크고 무거운 방패(60∼100cm, 평균 8kg)를 휴대한 채로 유영(遊泳)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그리스 병사들은 물을 만나면 유영에 앞서 먼저 방패를 강 건너편으로 던져서 도섭(徒涉)을 위한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에 의해서 고안된 경기가 원반던지기인 셈이다. 경기 방식은 강폭이 넓을수록 멀리 던지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당연히 원반을 던진 거리로 승부를 결정했다는 점은 사냥이나 살상을 위해 정밀도를 요하는 던지기에서 유래한 경기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원반이 당시의 방패 무게에 비해 고작 1/3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현 세계기록 보유자가 남녀 모두 유난히 팔이 길고, 상체가 잘 발달된 독일인이라는 점과 47개나 되는 육상 종목 가운데 여성의 세계기록이 남성을 능가(유르겐 쉴트<男> : 74.8m, 가브리엘 라인쉬<女> : 76.80m)하는 유일한 종목이라는 점이다. 아래의 그림들은 고대와 현대의 경기방식을 보여주는 자료인데 세부 동작들을 비교해 보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유명한 ‘원반 던지는 사람(Discobolus)’이라는 조각상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먼저, 상체의 각도인데 고대 경기자의 허리가 너무 앞으로 굽어 있어 무게 중심이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체 회전력을 직선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오늘날의 경기 본질과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또 다른 특징으로 눈과 왼손의 방향과 위치인데 오늘날 왼손은 얼굴과 함께 오른손의 회전력과 원반의 방향성을 통제해 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원반의 반대 방향을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래 로마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조각상은 선수의 눈이 오히려 원반을 쳐다보고 있어 원반이 제대로 멀리 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일까?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페르세우스(Perseus)는 어느 날 우연히 경기에 참가해 던진 원반이 그 경기를 지켜보던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Acrisius)를 맞춰 죽게 했다는 신화가 전해지는지도 모르겠다.
3. 고대의 원반던지기 4. 현대의 원반던지기
5. 그리스 토기에 그려진 원반던지기 모습
6. Discobolus(원반 던지는 사람)는 기원전 485년 그리스 조각가 Myron에 의해 제작된 최초의 청동상이나 원형은 전해지지 않고, 현존하는 조각상들은 모두 후대에 복제된 것이다. 사진은 로마국립박물관(왼쪽)과 대영박물관(오른쪽)에 소장된 것으로 약간 다르다.
7. 페르세우스(Perseus)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는 아크리시우스(Acrisius)
나. 창던지기(Akon, Javelin Throw)
창을 들고 35미터 이내의 거리를 도움닫기 하여 가장 멀리 던진 거리로 순위를 겨루는 경기 * 남자용 : 길이 2.6∼2.7미터, 무게 800그램 * 여자용 : 길이 2.2∼2.3미터, 무게 600그램 |
창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매우 오래된 사냥의 수단인 동시에 대표적인 살상의 무기로 간주되며 이미 고대 그리스 이전부터 전쟁에 사용된 투척무기이다. 창던지기를 설명하기에 앞서 서양의 고대 역사와 전쟁 특히, 그리스·로마전쟁에 정통한 한 전문가의 주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그리스군의 주력인 중갑보병의 편제 무기와 활용에 관한 것으로 주장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 중갑보병의 주요 무기는 6피트 6인치에서 10피트(2∼3미터) 사이의 다양한 길이의 창이다. 창은 통상 어깨 위로 들어 던져서 사용했다.”(John Warry), 1976) 부연하면, 물론 칼(날의 길이만 약 2피트<60센티미터>에 이르는 비교적 단검)도 무장했지만 팔랑스(Phalanx)라는 밀집 전투대형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전술에는 창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1
여기서 팔랑스를 운용하는 전술이란 서로 ‘럭비의 스크럼(Scrum)’처럼 상대를 힘으로 밀어 붙여 그 대형을 와해시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중복된 대열(오와 열)을 유지하고, 격돌해서는 비교적 멀리서 상대 팔랑스를 와해시킬 무기가 필요했는데 이것이 창이었다. 어느 일방의 전투대형이 와해되면, 대형에서 이탈하거나 또는 도주하는 전투원들이 속출하게 되며 이들을 살육하는 것이 칼이다. 이런 전통은 그리스의 뒤를 이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했던 마케도니아에 이어졌는데 그들이 사용했던 창, 사리사(Sarissa)의 길이가 무려 4.2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창을 던지는 모습은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창의 구조와 경기방법 등은 사뭇 달랐다.
1. 현대 창던지기 2. 고대 창던지기 / 테르모필레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 300의 창던지는 장면
앞서 소개한 존 워리는 자신의 저서에 고대 그리스군의 중갑보병들이 사용한 창의 생김새에 대하여 중요한 단서를 남겼는데 “그들이 사용한 창의 중앙 부근의 손잡이는 가죽 끈으로 묶여 있었다.”(John Warry, 1976)고 주장하였다. 이는 고대 그리스 군에서는 안킬레(Ankyle)로 불리는 일종의 ‘보조 추진 장치’를 제작해 활용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창의 중심이 되는 근처를 손잡이로 정하고, 아래 두 번째 그림처럼 가죽 끈으로 고리를 만들어 세 번째와 네 번째 그림처럼 고리에 검지와 중지를 걸어서 던졌던 것이다. 이렇게 한 배경에는 창의 회전력(spin)을 배가시킴으로써 창의 비행 중 공기의 저항을 줄여 비거리(飛距離)와 안정도를 증진시켜 명중률을 제고하려는 실전적이며 경험적 지혜가 숨어 있다. 이 방법은 오늘날에도 호주와 뉴기니의 일부 부족들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방식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앞서 원반던지기처럼 창던지기도 정확도를 가지고 승부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현대 스포츠 종목에도 사격이나 양궁 또는 일부의 혼성경기(10종경기, 바이애슬런 등)를 제외하면 주로 비거리의 우열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종목이 많은데 고대 종목 가운데 창던지기는 유일하게 정확도를 가지고 승부하는 유일한 종목이었다. 경기방식은 오늘날처럼 창을 멀리 던진 거리로 승부를 결정하는 방식(Ekebolon)과 창을 던져 구체적인 표적을 맞추는 방식(Stochastikon)으로 구분해 진행했다고 한다.
3. 그리스 토기에 그려진 창던지는 장면 손가락 고리(Ankyle)와 활용
4. 창던지는 사람(Akontistis) 청동상
5. 손가락 고리(Ankyle)를 활용해 창을 던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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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hn Warry :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고, 주로 헬레니즘 시대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연구에 전념했으며 특히 군사(軍史) 분야에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음. - Alexander the Great - Alexander 334-323 B.C. - Warfare in the Classical World : War and the Ancient Civilizations of Greece and Rome(특히, 이 책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과 전쟁에 대한 역작이자 필독서로 평가되고 있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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