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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신성의 스포츠, 타락의 스포츠 그 사이에서..

 

 

 

글/박현애(이화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 강사)

 

           “그동안의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더 이상 스포츠는 신성하지 않습니다.” 런던 올림픽 펜싱 신아람 선수의 멈춰버린 1초에 대하여 이 경기를 중계하던 최승돈 아나운서의 한마디였다. 신아람 선수,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분노를 함축할 수 있는 의미있는 멘트일 것이다.

 

 

프로 스포츠의 승부조작 파문, 유명 운동선수 출신 교수의 학위논문 표절 판명과 뒤이은 대필 의혹, 런던 올림픽에서의 오판과 오심, 2012년 한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다. 순수한 정신, 고귀함과 정의가 살아있는 스포츠 정신이 이제는 그 존재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다. 또한 이를 지켜본 이들에게 이러한 일들은 세상에 대한 또 하나의 불신과 부당함으로 비춰졌고 나아가 ‘스포츠마저 부패했는가!’ 하는 조심스런 의심을 살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다분히 충격적인 일들이지만, 어지러운 현재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찝찝함은 남으나 이내 잊을 수 있는 사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사건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승부조작 파문에 연루된 한 선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논문을 표절한 선수는 교수직을 내 놓음과 동시에 국민 스포츠 스타로서의 면모가 추락했다. 심판의 오심에 희생된 선수는 끝내 눈물을 흘렸고, 스포츠에 대한 불신 속에 자신의 오랜 꿈이 기약 없는 ‘다음’으로 유보되었다. 개인에게는 물론 스포츠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다.

 

 

인간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스포츠는 현 시대의 많은 특징들을 드러낸다. 의지와 투혼, 규칙안의 평등이 스포츠의 순수한 면을 이야기 하지만, 그 반대편 또한 스포츠에 스며들어 있으며 스포츠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세상에 다시 비춰진다. 가까운 예로 런던 올림픽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기기위해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피했고, 규칙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반칙을 일삼고, 자신의 승리를 위해 반칙의 정도가 상대선수의 선수 생활도 위협할 무자비한 공격을 일삼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확인했다. 강팀과 만나지 않으려 형편없는 플레이를 펼친 여자 배드민턴이 그랬고, 마찬가지로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와 경기한 노르웨이 핸드볼 팀의 잔인한 반칙, 이후 모든 반칙을 잊고 승리에 도취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스포츠 정신을 찾을 수는 없었다. 법의 틈새를 노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부패와 부정을 일삼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스포츠에서도 자행되고 있음을 목격했다.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현대사회는 지나치게 어지러워졌고, 교활해졌다. 스포츠 또한 교활하고 뻔뻔스러워졌다. 이러한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가는 선수들의 선택은 아마도 더욱 정직하거나 더욱 영악해지는 것 뿐 일 것이다. 부패를 의심하게 되고, 실수일지 모를 판정으로 인한 다른 사람 인생의 희생, 그리고 바등거려도 명쾌할 수 없는 무기력함까지... 그 안에서 앞으로 스포츠는 정직함과 영악함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교과서적인 발상이겠으나 선택은 하나다. 더욱 정직해지는 일이다. 더욱 순수해야 할 것이고 더욱 감동적인 스포츠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애써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스포츠가 숭고한 인간문화로 남는 길일 것이다.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결과중심주의가 현대사회의 중심 사상이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업과 경제로 흐르고 있으며 그것만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스포츠가 정의롭고 순수해야한다고 이야기 하는 이유, 또는 승패나 성과가 아닌 감성적인 측면이 살아있고 스포츠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항변하는 이유는 스포츠는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아직 정의롭고 공정하며 그래서 순수하다고 믿을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락해서 악취가 나도록 부패했다고 생각되는 세상에 방부제와 같은 존재가 바로 스포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길, 그리고 희망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도 아니고, 직선거리는 더욱 아니다. 목적지로 가기위해 신호를 준수해야 하고, 다른 차량에 막히기도 하며, 우회하고, 때로는 되돌아가야 한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 IOC 위원장을 역임한 로드 킬라닌(Lord Killanin)은 “올림픽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불완전한 부분을 개선해가면서 그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부패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부패한 면이 있다면, 이를 정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는 파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재건축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비우기 위해서는 이전에 채워져야 하듯이 정화라는 것은 더럽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미 더러워졌다고 의심된다면, 이젠 정화를 위해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화란 갖은 악이 들어있던 판도라 상자 안의 마지막 남은 희망과 같은 것이다.

 

마니 풀리떼(mani pulite), 깨끗한 손을 일컫는 과거 이탈리아 정치계의 부정과 부패척결을 위한 운동이 이제 전 세계의 스포츠에도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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