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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축구와 카타르시스

 


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많은 학자들은 축구가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그들의 본능 속에 내재한 공격본능과 사회생활을 통해 누적된 울분을 일소시켜주고, 그 결과 가슴속에 품었던 악의를 없애 주며, 결국에는 사람들이 매우 평온한 감정을 지닌 선한 존재로 돌아가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평온한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비극을 관람한 후에 갖게 되는 심리상태 또는 정서적 안정 상태를 카타르시스라고 불렀다. 과연 우리는 경기가 벌어지는 축구장이나 TV앞에 앉아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극을 관람한 후에 도달한 안정적 심리상태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다른 사회 영역에서 공격욕구와 울분의 폭발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축구는 분명 이런 카타르시스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축구를 관람하면서 평상시에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한다. 목이 터져라 괴성을 지르고, 욕을 해대며, 온 몸을 들썩인다. 그러고 나면 속이 후련해질 수도 있고 울분이나 공격본능이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경험적 연구들은 이와는 다소 다른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한 마디로 축구의 카타르시스 기능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골드슈타인과 암스에 따르면 직접 경기를 뛴 선수들은 경기 후에 공격성이 많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경기를 관람한 사람들은 오히려 공격성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축구경기를 관람하기 전과 후에 공격성관련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요청하였다. 설문지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기를 관람한 후에 더 공격적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응원팀이 승리했건 패배했건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축구의 카타르시스 기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광적인 축구팬들의 행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현상이다. 영국의 훌리건이나 독일의 슐라하텐부믈러는 경기 중에 또는 경기종료 후에 매우 빈번하게 폭력사태를 일으킨다. 남미의 국가들에서도 축구경기는 곧 잘 관중들을 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 급기야는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제9회 멕시코월드컵(1970년) 지역예선전에서 격돌하였다. 양 쪽 관중간의 싸움으로 수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양국은 일주일 동안 국교를 단절하였으며, 온두라스는 그 나라에서 일하고 있던 10만 명 이상의 엘살바도르인들을 추방하였고, 이에 불만을 품은 엘살바도르 군대가 온두라스를 침공했다. 양국 간의 전쟁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고 4천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불상사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64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페루와 아르헨티나 팀이 격돌했다. 경기 종료 직전 주심이 골을 무효로 선언하자 페루의 관중들은 격분했고 곧 바로 오렌지, 맥주깡통, 각종 잡동사니들이 경기장으로 날아들었다. 소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경찰이 쏜 가스총에 놀란 관중들이 출입구로 몰렸고 소란의 와중에 3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관중들의 폭동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는데 그 이유는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 아니라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이렇듯 축구는 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공격욕구를 부추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카타르시스 이론을 더 이상 신뢰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축구 시합이 울분의 치료 작용과 울분의 증폭 작용을 거의 똑같은 비율로 가져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축구의 의미를 조금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때 카타르시스 이론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골드슈타인과 암스의 연구는 축구를 단순히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만으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축구경기가 종료된 후 밤늦도록 가두행진을 벌이거나 호프집에 둘러앉아 경기결과를 놓고 열변을 토하는 뒤풀이행사까지 축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면 연구결과는 분명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188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영국의 대학들은 규율과 자기통제를 강조했다. 주로 중산층 출신이었던 대학생들은 중고생처럼 취급받았다. 엄한 규율이 지배하는 대학생활에 대한 보상으로서 대학당국은 학생들에게 주말을 이용해 축구경기를 허락하였다. 우리나라의 연고전과 비슷한 이러한 행사를 통해 대학생들은 주중에 억압받아왔던 감정을 합법적이고도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대학의 일상을 지배했던 엄한 규율, 이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축구경기가 열리는 주말을 전후해서 폭발적으로 해소하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축구경기가 열리기 전날부터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억압된 감정을 달랬다. 이들은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에 경기장에 모여 마음껏 소리 지르며 위스키를 마셨고, 경기가 끝나면 파티를 열었다. 이 기간은 일상과 비교할 때 정서적 타임-아웃, 즉 일상이라는 경기가 잠시 동안 정지되는 시간이었다. 이렇듯 당시의 축구경기는 그것이 동반하는 전야축제와 뒤풀이까지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현대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경기가 끝난 후에 흥분한 팬들이 일으키는 소요사태와 가두행진도 축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는 뜻이다. 이렇게 축구를 넓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카타르시스 이론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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