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송형석(계명대학교 교수)
스포츠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을 꼽으라면 단연코 축구가 첫째일 것이다. 축구의 인기는 FIFA월드컵경기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월드컵경기는 오직 축구 한 종목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인기는 모든 스포츠를 총 망라하고 있는 올림픽경기를 능가한다. 월드컵경기와 같은 국가 대항전이 아니더라도 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 활성화되어 있는 프로축구리그 역시 그 인기 면에서 다른 프로스포츠종목들을 능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축구가 그토록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축구는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지닌 원초적인 욕망을 가장 잘 채워주기 때문이다.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바이러스에서부터 거대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삶은 싸움과 투쟁의 과정이다. 인간 역시 생물의 일종으로서 예외일 수 없다. 인류는 문명을 탄생시키기 이전부터 끊임없이 싸우면서 살아왔다. 생물의 싸움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격렬한 싸움이 같은 종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왜 같은 종끼리 그렇게 격렬하게 싸울까? 동종간의 싸움은 동족 번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함께 있으면 싸우니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멀리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각 개체들은 그 종족이 살 수 있는 환경 전반으로 퍼지게 되며, 결국 식량 확보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다. 이외에도 동종간의 싸움은 번식에 있어서 강자에게 우선권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종족의 지속적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약자의 새끼보다는 강자의 새끼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격적 성향은 수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본능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 성향은 인간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억눌리고 억압되어야만 했다. 공격적 욕구의 자유로운 충족은 문명화된 생활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억압되어야만 하는 본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폐기되지 않는 본능은 인위적인 배출구를 통해서라도 발산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억압된 공격욕구의 배출방식은 전쟁과 같은 인간 살육방식에서 사냥을 통한 동물 살육방식으로, 동물의 직접 살육방식에서 사냥개를 통한 간접 살육방식으로, 그리고 실제적 살육방식에서 축구, 농구, 사격, 양궁 같은 상징적 살육방식으로 계속해서 진화해왔다.
초기 문명사회에서 공격욕구 분출기제는 매우 폭력적이고 반문명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행위들은 한편으로 환영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비난을 면하기 위하여 이러한 행위들은 더욱 문명화되어질 필요가 있었다. 공격욕구 배출방식이 문명화되면서 이를 통해 얻어지는 쾌감의 강도가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근대 스포츠는 쾌락의 원천을 다양화하고, 쾌락의 시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근대 스포츠의 특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것이 여우사냥이다.
여우사냥은 사냥꾼이 단순히 여우를 잡아 죽이는 활동이 아니다. 여우사냥에서 살육의 주체는 사냥꾼에서 사냥개로 이전된다. 사냥 역시 인간 살육을 대치한다는 점에서 문명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 동물의 직접 살육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우 살육의 역할을 사냥개에게 양도한 사냥꾼은 쾌락의 원천을 추적과 관람 행위로 대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쾌락의 강도가 많이 약해졌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쾌락의 원천을 다양화하고, 긴장과 흥분의 순간을 연장시킬 필요가 있다. 여우사냥에서는 여우와 사냥개, 사냥개와 사냥개, 사냥꾼과 사냥꾼이 3중으로 경합을 벌이며, 여우추적을 고의적으로 어렵게 만듦으로써 클라이맥스가 지연되었다.
축구도 이 과정을 그대로 밟아가면서 발전해 왔다. 현대 축구의 전신인 민속경기는 무자비한 패싸움을 방불케 했다. 경기의 장소와 시간, 인원을 규정하는 최소한의 규칙마저도 없었던 이 경기에서 매번 부상자들이 속출하였다. 수십 명이 떼를 지어 몰려들어 서로 치고, 차며, 넘어뜨리는 과정에서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예사였으며, 그 와중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국가가 나서서 축구금지령를 내린 경우도 있다. 20세기 들어서 발로 상대방을 걷어차는 행위나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잡는 행위 또는 발을 거는 행위가 금지되었으며, 오프사이드 규칙이 강화되었고, 경기 스타일도 공격중심에서 수비중심으로 바뀌었다. 경기의 폭력적이고 역동적인 요소들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백 패스한 공을 골키퍼가 잡지 못하게 하거나, 공이 아웃되었을 때 예비로 준비한 공을 신속하게 투입하도록 규칙을 개정함으로써 경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했지만 거친 경기에서 기교 경기로의 변화는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다른 스포츠종목들에 비해 여전히 거칠고 원시적인 요소를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골프, 승마, 육상과 같은 개인기 중심 경기나 배구, 테니스, 탁구 같은 네트 경기에서는 격렬한 신체접촉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이에 비해 축구에서는 몸싸움이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태클이 허용되기도 한다. 물론 뒤에서 하는 태클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면 야구나 농구, 하키, 럭비 등은 어떤가? 이 종목들 역시 억압된 욕구의 해방기제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효과의 측면에서 축구에는 미치지 못한다. 야구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나 정적 동작과 휴지부가 너무 많아서 사냥집단이 목표물을 전력으로 추격할 때 갖게 되는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농구는 빠르고 유려한 동작을 많이 수반하고 목표물을 잡는 최후의 순간에 조준이라는 요소도 구비하고 있으나, 신체적 위험이 너무나 적고 슛의 순간을 ‘최후의 일격’이라고 말하기에는 희소성이 약하다. 하키의 경우 공이 지나치게 작기 때문에 관중이 눈으로 플레이를 신속하게 쫓아가지 못하는 점이 장애요소이다. 럭비는 격렬함이 충분하고 신체적 위험을 수반하는 점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으나 섬세한 동작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목표물에 도달하는 클라이맥스에의 이행이라는 점에서는 역시 약점이 있다.
축구의 원시성은 발의 사용에서 극대화된다. 발은 문명화된 손에 비해 여전히 원시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인류학자 르르와-구랑은 인류문명의 기원을 손의 사용에서 찾았다. 손을 많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뇌가 발달했고, 뇌가 발달하면서 언어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손은 분명 인간의 신체 중 가장 문명화된 영역 가운데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발은 그 쓰임이 대체로 걷기와 서기라는 원시적인 기능으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무용이나 무술에서 발은 걷기와 서기라는 자연적 기능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지만 손에 비해 여전히 그 쓰임이 매우 제한적이며, 그 상징적 의미 또한 매우 열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대를 발끝으로 가리키거나 발로 건드리는 행위 또는 차는 행위는 여러 문화권에서 매우 불미스런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축구는 아직 원시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발을 주로 사용하는 경기라는 점에서 탈문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 이외의 대표적인 구기 종목들에서는 모두 손의 사용이 허용되지만 축구에서만큼은 손의 사용이 철저하게 금지된다. 골키퍼를 제외하고 누구든 손이 공에 닿으면 그 고의성 여부에 따라 곧바로 반칙이 선언된다. 문명의 상징인 손을 묶어두고 원시성의 상징인 발의 사용을 극대화하는 축구는 어느 모로 보나 가장 원시적 속성을 지닌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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