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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김연아의 7분 FLOW!


                                                                                         
                                                                                 
                                                                글/ 김을환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석사)

1.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지난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을 열광 속으로 빠지게 만들었던 피겨퀸 김연아가 2011 ISU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모스크바)에서 준우승(2위)을 차지했다. 13개월의 공백의 영향이 없다고는 말 못한다고 했던 그녀지만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결별을 하고 미국 LA에서 새로운 지도자, 피터 오피가드 코치와 함께 지난 겨울 내내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준비했던 새 프로그램 ‘지젤’과 ‘오마주 투 코리아’를 선보였다.

김연아는 지금 까지 누구보다도 힘든 과정(스케이트화 문제, 발목과 허리부상, 다른 선수들의 견제)을 잘 견뎌왔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환경)속에서도 많은 국제대회를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잘 이끌어 왔다. 이번 2011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를 앞둔 인터뷰에서 김연아는 "3월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 대비해 미국에서 훈련할 때는 컨디션이 완벽했는데, 일정이 바뀐 만큼 남은 1개월 동안 열심히 훈련해서 (페이스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 했지만   결국 13개월간의 실전 공백은 김연아에게도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김연아는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 필요 할 뿐 은퇴는 없다고 말했다. 다시 주인공으로 무대 위에 오르기를 준비하는 행복한 김연아에게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그녀를 이토록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 출처 : www.yuna.com>

 
2. 나는 나를 넘어선다.

피겨스케이트는 7분의 드라마라고 김연아는 그녀의 책「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서 말했다. 그 7분(쇼트프로그램 2분 50초, 롱프로그램 4분 10초)이야 말로 김연아에게는 무엇보다도 황홀한 시간일 것이다. 김연아는 지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피겨스케이팅에 몰입(FLOW)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FLOW(몰입)는 ‘외적 조건들에 의해 압도되지 않고,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내 운명은 내가 주인인 듯 한 느낌이 드는 순간’의 경험으로 또 다른 말로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이라고도 한다.

FLOW는 우리 몸을 통해서, 지적활동을 통해서, 그리고 일 속에서, 또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최적 경험은 문제에 대처하는 기술과 당면한 삶의 도전의 수준이 적절하게 균형이 맞을 때 가능한데, 만약에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의 수준보다 도전이 낮은 경우에는 따분함이 생기고, 자신의 대처 능력을 넘어서는 어려운 문제가 닥쳐올 때는 불안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바로 이러한 FLOW의 최적 경험의 상태를 만드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를 제대로 즐길 줄 알기에 우리는 그녀를 대인배 김슨생이라 부른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를 하거나 자신의 생각대로 점수를 받지 못했을 때에도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항상, 다음에 있는 프리스케이팅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 난관 속에서도 목적을 가지고 도전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창조적 행동으로 이끌어내는 힘이야 말로 FLOW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요소라 하겠다. 
  
항상 라이벌로 불려오는 아사다 마오와는 주니어 시절부터 경쟁을 하게 되었는데, 김연아는 오히려 이런 경쟁상대가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된다고 생각할 만큼 FLOW에 있어서의 상당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신의 내면세계인 의식의 통제를 통해서 행복을 성취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이며,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서 스케이팅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식의 질서상태야 말로 최상의 FLOW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내면 의식의 통제와 함께 신체적 또는 감각적인 기술에 있어서도 뛰어난 통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3. 표현력에 눈뜨다.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에서 필요로 하는 신체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 보다 더 많은 훈련을 하는 스케이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그녀는 타고난 재능도 겸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연아를 가장 김연아 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김연아의 FLOW라 하겠다. 이 FLOW는 김연아가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다. 특히나 김연아의 경우에는 표현력에 있어서 다른 피겨선수들을 압도하는데, 이는 감각을 통한 FLOW가 상당히 발달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훌륭한 예술 작품을 접하게 되면, 그 훌륭함을 저절로 알게 되고, 시각적 뿐만 아니라 감각적으로 또 지적으로도 큰 전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감각적 FLOW의 훈련을 통해서 가능하다. 김연아에게 처음으로 표현력을 눈을 뜨게 해 준 프로그램은 바로 ‘록산느의 탱고’였는데, 표현력을 위해서 그녀는 안무와 표정연습으로만 따로 시간을 내서 몇 시간이고 공을 들여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습과정에서 코치의 칭찬이 바로 그녀를 아름답게 춤출 수 있게 만든 비결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 칭찬과 같은 긍정이라고 하는 놈이야 말로 FLOW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그녀는 음악의 FLOW라고 할 수 있는 듣는 기쁨에 있어서도 눈을 뜨게 되는데, 이는 상상을 뛰어넘는 유쾌한 천재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성적인 성격도 지금처럼 웃음이 많아지고, 자신감이 넘치고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음악은 조직화된 청각적 정보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정리해주고 심리적 엔트로피-즉 관련 없는 정보들이 우리가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때 경험하게 되는 무질서-를 감소시켜 주고, 지루함이나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있고, 진지하게 감상할 때는 FLOW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FLOW,p.205)」

또한,「음악에 내재한 기쁨의 잠재성을 최대로 살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을 FLOW로 변화시킬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알고 있다.(FLOW.p.207)」라고 하는데,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 프로그램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주의를 집중해서 귀를 열고 의식적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하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음악은 그녀의 상상의 물감이 되고, 그 물감으로 다시 음악이 흐르는 캔버스 위에 그녀는 아름다운 몸짓으로 한 편의 예술작품을 그린다. 신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이 바로 그녀는 안에 있다.       


   
4. 강철 나비, 날개를 펴다. 

김연아의 좌우명은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이다. 그녀는 이 말이 가장 정직하면서도 운동하는 본인한테 가장 필요한 말이었는데, 특히 허리부상으로 고생이 심했던 시절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차가운 아이스링크 위에서 무수히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 고통을 이겨내고 ‘Gain’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지금의 ‘김연아’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김연아에게 있어서 'Pain'은 말 그대로 육체적인 부상으로 인한 고통이었는데, 그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FLOW하는 김연아도 함께 ‘Gain’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좌절을 하거나 포기를 하고 만다. 그러나 김연아는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더 많은 (현명한) 노력을 했고, 이는 결국 더 큰 발전과 성장으로 이어졌다. ‘Pain’은 ‘Gain’과 맞닿아 있고 ‘Gain’이 바로 ‘김연아’ 자신이 라고 한다면, 이 가운데에 바로 FLOW가 존재하는 것이다. 

 「의식의 통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순진한 생각처럼 보인다. 육체가 고통과 배가 고픔 그리고 빈곤함을 견뎌 낼 수 있는 정도에는 한계가 있으리라. 그러나 “정신이 우리 육체를 지배한다는 사실은 생물학과 의학에서는 무시되어 왔지만, 우리가 인생을 통해 알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이다”라고 적절히 표현한 프란츠 박사의 말 역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FLOW,p.351~352)」 

  여느 사람들처럼 김연아도 넘어지고 실패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넘어지는 것은 더 큰 도약을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되었고, 상처도 때론 약이 되었고, 실패를 통해서 완성되지 않은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녀는 말한다.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찾아온다고... 피겨스케이팅을 하기에 적합한 전용 아이스링크장 하나 없는 이 대한민국에서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왔다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이 바로 김연아를 ‘더 높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만든 이유일 수도 있겠다.   
 
5.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피겨스케이터로써의 뛰어난 실력, 연예인 뺨치는 외모, CF 등을 통한 많은 수입, 그리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의 김연아는 정말 행복할까? 무대 위에서 행복해 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연기가 아닐까? 그녀는 피겨스케이팅에서 성공을 했기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닌가?  이런 질문들은 행복에 대해 묻고 있지만, 행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질문들이다. 행복은 하나가 아니며, 또 아주 다양하기 때문이다.
 
FLOW 역시 하나가 아니며 다양하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기까지 한다. 또한 행복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김연아는 말한다.「시합을 준비하고 치르는 것은 몸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도 많이 힘들어요. 특히 긴장감. 경기를 하기 직전의 그 긴장된 느낌은 정말 너무너무 싫어요. 그런데 경기가 끝났을 때, 물론 원하는 대로 잘했을 때의 얘기지만, 끝났을 때의 그 희열은 진짜 선수가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피겨를 하는 것 같아요.(김연아의 7분 드라마,p.281)」

필자가 쓴 이 기사는 김연아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김연아에 대해서 그리고 행복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연아가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정말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황홀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는 그래서 FLOW 한 것이 아닐까?



참고자료

1. 김연아의 7분 드라마, 김연아 (중앙출판사)
2. FLOW, 미하이 첵센트미하이 (한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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