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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동계올림픽] 새 영웅 만들기- 국가대표 공론장의 지각변동 ③

글/ 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적극적인 스포츠 문호개방도 서둘러야


만약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관왕 빅토르 안이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면. 

수많은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고 한번 벌어진 개인사를 다시 뒤집어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빅토르 안의 경우 최악의 상황을 한번 가정하면 아마도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질 법하다. 하나도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한국과 러시아는 물론 세계 주요 언론에 주목을 전혀 받지 못했을 것이다. 부진한 성적표를 거머 쥔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그는 세인들의 기억속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을 게다. 그간 국적을 바꾼 많은 선수들이 성적을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듯이 말이다.

하지만 천부적인 소질을 자타가 인정한 빅토르 안은 한국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한을 되씹고 러시아 국가대표로 새 둥지를 찾아가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그것도 한국 국가대표 시절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했던 것과 똑같은 성적을 내면서다. 한국과 러시아 언론보다 비교적 객관적인 논조를 보일 수 있는 미국 언론 기사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빅토르 안이 남자 1000m 결승에서 1위로 통과, 첫 금메달을 딴 뒤 미국 신문 샌디에이고 유니언트리뷴은 “빅토르 안이 국적을 바꿔 올림픽에 출전한 첫 선수는 아니지만 그는 쇼트트랙에서 농구의 마이클 조던처럼 존경받는 선수”라며 칭찬한 뒤 “빅토르 안이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조던이 미국 대표팀과 불화를 겪은 끝에 쿠바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일”이라고 보도했다. 그의 귀화가 한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파를 안겨주는 큰 사건이었음을 암시해주는 기사였다.


빅토르 안은 국가대표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분석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사회학적으로 깊은 연구를 해볼만한 대상이다. 먼저 국가대표라는 개념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변이와 전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 국가대표에서 탈락, 선수 생활에서 최대 위기를 만났던 빅토르 안이 꼭 재기에 성공하고 말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정신을 갖고 좋은 조건으로 귀화제의를 한 러시아로 국적을 바꾼 것은 선수로서는 큰 모험이었고 국가대표 자격으로서도 큰 변이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것은 한국 스포츠가 사상 처음으로 맞는 최초의 반문이었으며, 한국 빙상 전체를 뒤흔드는 전복의 전주곡이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국가대표에서 물러난 선수를 이렇다하게 관리하지 않았다. 빙상연맹 자체도 토리노 올림픽을 뒤로 빅토르 안을 사실상 용도폐기처분하고 그의 뒤를 이을 유망주를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이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달아 성적을 내면서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고나서야 잔뜩 긴장하게됐다. 연맹측 관계자들은 소치 동계올림픽직전 빅토르 안의 완전한 재기 가능성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한국스포츠가 간과한 것은 국가대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전체적인 이념적 흐름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거쳐 세계주의, 개인주의로 옮아감에 따라 국민들도 출중한 기량을 발휘하는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하고 환호하는 분위기이다. 국가와 민족보다 선수 개인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 호나우도, 류현진, 김연아 등이 열광적으로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대표에 대한 선수 개인들의 자세도 크게 변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정통성을 지켜 나가기 보다는 개인의 감성과 도전을 더 비중있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눈에띄게 늘어났다. 이념적으로 세상을 재단하기에는 세상이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이러한 변화를 촉발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시적인 관점으로의 패러다임적 전환과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젊은 세대의 관심은 이미 정치에서 문화 소비 스타일같은 창조적인 영역의 세계로 이동했으며, 호흡이 짧고 감성대가 예민해져 자기 개인을 중시하고 자유스러운 생활을 구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젊은 세대들에게 이데올로기나 국가, 민족 같은 얘기를 말해봐야 별 감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빅토르 안도 이런 젊은 세대들의 의식과 사고의 변화에 결코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재기를 노리며 한국 국가대표 선발에서 탈락한 빅토르 안이 믿을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으며, 러시아로 귀화한 것도 결국은 자기의 도전을 기필코 성공시키려는 목표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빅토르 안은 한국과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국가대표 선수 관리, 국적 이적 등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과제등을 던져주었다. 특히 러시아에 빅토르 안이라는 ‘대어’를 넘겨준 한국 스포츠에게는 뼈아픈 자책과 반성을 하도록 했다. 

해방이후 남의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는 척박한 나라에서 이제는 남의 나라를 도와주며 무역 규모 세계10위로 성장한 한국의 국력 성장에 걸맞게 한국 스포츠도 압축 성장을 해왔다. 동하계 종목에 걸쳐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어여쁘게 자리잡은 한국스포츠는 이제 국가대표 관리도 선진국다운 시스템과 인식의 틀을 갖춰야한다.  밖으로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외개방을 하고, 안으로는 인재관리와 발굴이 폭넓게 깊게 이루어지는 네트워크를 운영해야 할 것이다. 경제력, 스포츠 국력 등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한국이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기 위해선 새로운 패러다임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끝으로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한국이 2050년에 국민소득 8만달러의 국가가 될 것으로 예견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던 것을 소개하겠다.  세 개부분의 개방이 선결조건이라면서 가족개방, 교육개방, 이민개방을 들었다. 빅토르 안이라는 인재를 유출한 한국스포츠는 세계화시대를 맞아 스포츠 문호를 활짝 개방해 각 종목에 걸쳐 빅토르 안에 필적하는 뛰어난 스포츠 동량들을 받아들이는 전향적인 사고의 전환을 모색할만하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이제 평창 올림픽이 4년 앞으로 다가왔다. 길다고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다. 미리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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