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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고대올림픽 종목 연구 : 7. 전쟁에서 유래한 군인들의 놀이(7)

 

 

글/ 윤동일 (국방부)

 

 

 

라. 군대 스포츠의 이모저모

지난 연재에서 스포츠는 전쟁에서 유래한 군인들의 놀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오늘날 군인들이 하는 스포츠는 어떨까? 군대 스포츠라고 정해진 종목은 없으나 전통적으로 전 부대원이 참가하는 단체경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체육활동을 한다. 달리기는 통상 이등병부터 부대장까지 계급별 대표를 선발해 계주로 실시하고, 체급경기인 태권도나 씨름도 체급에서 한 명씩 선발해 개인별로 겨루지만 개별성적을 종합하기 때문에 개인경기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스포츠의 전투적 성향으로 인해 군에서는 전통적으로 교육훈련과 함께 체육대회는 부대의 전투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인식됐기 때문에 스포츠를 통해 전투상황을 간접 체험하고, 집단의 단결과 사기를 고양하며 전술적 감각을 키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 특징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속성으로 구분해 설명할 수 있다.

 

1. 전투성

태권도를 포함한 권투, 전통씨름 등 격투종목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축구, 농구, 배구, 달리기(계주)와 같은 단체경기도 간부와 병사, 직책들을 골고루 편성하여 시행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기는 계급별 참가인원을 규정한다. 종목별 경기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에 부대원 전체가 참가할 수는 없으나 계급별로 인원을 할당하여 팀을 구성하면 조직의 대표성이 부각되며 동시에 여러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휘부는 통상 나이가 많고,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 수립에 고심한다. 리더들은 자신의 행동과 말 한마디를 조심하고, 결정적인 승리에 기여하지 못하더라도 패인이 되지 않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한다.

또한 비교적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종목으로 집단축구(중세 유럽의 ‘몹풋볼<mob football>’과 달리 발로만 하는 경기임)와 격구(擊毬)가 있다. 특히, 격구는 축구와 럭비를 합친 경기로 손도 사용할 수 있어 부상이 많은 편이다. 역사가 깊은 이 경기는 그리스·로마군의 군사훈련으로 시작했던 공놀이(하르파스툼)가 유럽으로 건너가 군대는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축제성격의 중독성 강한 집단축구(몹풋볼)가 되었는데 경기방식은 이와 그리 다르지 않다. 지역마다 쉬보론타이드풋볼(스코틀랜드), 갤릭풋볼(아일랜드), 칼치오(이탈리아), 술(프랑스) 등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그 유래와 경기방식에 있어 가장 전투와 유사한 집단경기로 규정할 수 있다. 이 경기들은 여전히 자국을 대표하는 민속 스포츠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 단결성

전투에 있어 단결은 곧 전투의 승패와 직결되고, 전승의 전제가 된다. 운동회나 축제에 감초 같은 줄다리기(영어로 ‘tug-of-war’라 하나 전쟁과는 무관하고, 한 때 올림픽의 정식종목이었으나 잦은 충돌과 다툼으로 대중화 실패로 정식종목에서 제외되었다.)가 있는데 군에서 제대로 해 본 경험이 있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경기라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힘과 자세를 지향해야 하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다양한 전술(상대에 따라 힘의 집중 시기의 선택, 공격과 방어 자세의 변화 등)과 몰입이 중요하다. 살을 맞대어 인접한 동료들의 심장 박동과 거친 숨소리를 느끼며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내야 하는 이 경기는 순간의 방심과 ‘나 하나 정도야’하는 예외 의식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다.

레크리에이션이었던 단체 줄넘기도 군에서 하게 되면 그 어떤 경기보다 강인한 체력과 인내 그리고 조직의 응집력이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다. 고대 무장 달리기를 연상케 하는 단체 무장구보는 전투복장으로 군장을 매고, 화기를 휴대한 채 집단 전체가 참가하는 종목이다. 짐작한 바와 같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전투원의 기록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개인능력 보다는 집단성이 중시된다. 참호의 백병전 상황을 상정한 참호격투는 피아의 강약‧점을 분석하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며 긴밀한 협동과 인내를 요구하며 리더의 역할이 중시된다.

 

3. 전술성

앞서 소개한 많은 스포츠 종목들도 전략적 사고와 승리를 위한 전술적 선택이 매우 중요하나 군대 스포츠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격구와 기마전이다. 격구는 선수 숫자에 따라 공(통상 럭비공)을 3개까지 사용하는데 주도권 장악이 가능하다면 2개의 공에는 공격선수를 중점 편성하고, 나머지는 수비에 치중하며 미드필더를 보강하여 공수를 연결하도록 한다. 간단히 말하면 공 3개 중 2개를 경기시간 내내 상대의 진영에 두게 되면 승리는 쉬워진다. 상대에 따라 나에게 가용한 전투력을 배분하여 전투조직과 리더를 편성하며 역할과 임무를 구체화 한다. 이 과정에서 리더는 전투조직들 사이의 협동과 노력의 통합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으로 전체를 조망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가 골을 성공시키면 당연 분위기 반전이 가능하겠지만 나머지 공의 흐름에 도움을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전체 경기를 그르칠 수 있다.

기마전은 외형상 보면 말이 끄는 고대 전차전이나 현대 기갑전투와 유사하다. 무엇보다 전투대형을 갖추는 것에서부터 목표를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근접전투(4F)의 과정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 상대의 강․약점을 찾아(to Find) 나의 최소한의 전력으로 적의 강점을 묶어두고(to Fix), 적의 약점에 나의 강점을 투사(to Fight)하되 가장 짧고 치열한 방법으로 작전을 종결(to Finish)해야 한다. 경기는 전격(電擊)적으로 치러진다. 세 번의 매치에서 두 번을 이기면 승리하기 때문에 첫 매치 결과에 따라 1∼2개 대안을 더 준비한다. 짧은 순간에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예측, 신속한 의사결정, 과감한 행동이 핵심적이다. 따라서 리더들의 전투감각과 전술적 판단능력을 함양하는데 가장 적합한 종목이다.

 

4. 오락성

체육대회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종종 과열경쟁을 유발하고, 많은 부상과 크고 작은 충돌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래서 부상 발생을 방지하고, 부대원간 격한 감정도 완화시켜 조직 단결과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에 맞게 격구나 무장구보 등 사고유발 가능한 종목은 제외하고, 오락이나 레크리에이션을 함께 진행한다. 그러나 그나마 이런 활동 역시 군에서 하면 그 모습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전투에 필요한 화기·장비·물자를 조작하는 기술을 경연(시동 끈 지프를 밀거나 전차·장갑차의 궤도를 받쳐 주는 보기륜을 굴려 이어달리는 형식으로 하는 경기)하거나 전통의 민속놀이까지 포함된다.

골프도 예외는 아니다. 홀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전투상황을 상정하야 타격자세에 다양한 변화를 준다. 예를 들어 부상당한 상황을 가정해 외다리로 플레이하거나 화생방 오염 상황을 고려해 방독면을 착용한 채로 경기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과열경쟁을 방지하고, 조직원들의 관계개선을 위해 재미와 흥을 돋우기 위한 의도된 이벤트지만 ‘군인들은 놀이도 역시 전투상황에서 건제를 유지한 채 편제된 전투장비를 가지고 한다.’는 오랜 ‘항재전장(恒在戰場)’의 버릇과 철저히 ‘전투본능’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반영한 것이다.

 

       권투(영화아나폴리스)                   격구                               줄다리기                        참호격투

              기마전                        지프밀기(계주)                         고싸움                      바구니 터뜨리기

 

스포츠는 한 때 운동경기와 분리되어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겼던 시기가 있었으나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삶에는 보편적인 라이프 스타일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스포츠에 능통할 수 없고, 더욱이 수준급 스포츠맨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그 유래와 배경 등 관련 지식을 잘 알고, 절차와 규칙을 준수하면서 결과와 상관없이 몰입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최소한 전쟁에서 유래한 스포츠가 군에서 소외되거나 동시에 사회체육이 대중성과 오락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기본을 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한 연재를 통해 고대로부터 현대 스포츠 전반을 다루고, 군대스포츠의 개관도 살폈는데 마무리 차원에서 한 가지만 부연하고자 한다. 현실의 전쟁은 영화에 등장하는 멋진 배우들의 로맨스 섞인 유희(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병대와 일본군간의 치열했던 전투로 유명한 유황도<硫黃島, 이오지마> 해변에 상륙하여 파이프를 문 주인공의 모습에 비유하여 “존웨인 신드롬”이라 함)가 아니며 골목대장의 단순한 ‘놀이’나 ‘스포츠 경기’도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대가 전장상황의 고통을 감내하고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 인적 그리고 물적 강도에 의해 좌우된다. 또 부대의 전투력은 장병들의 용기, 사기, 군기, 단결, 전장 주도권을 향한 고집과 같은 의지 그리고 정신적·육체적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비록 아마추어였지만 과거 축구 선수시절, 뼈저리게 느낀 것은 신체능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정신력은 무의미하며 한 두 번의 행운으로 연속되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승전을 가져다주는 것은 군사의 수가 아니라 정신력이다. 정신적 힘은 물리적 힘의 3배 효과를 가져 온다.”는 나폴레옹의 금언도 ‘적과의 상대적인 물리력의 수준이 견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면 그리 억지 주장은 아닐 것이다.

 

 

참고자료

1. 스포츠가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미친 영향(김현덕, 1997)
2. 고대 그리스 격투스포츠 영웅들의 탄생과 약할(이종설, 2000)
3. 고대 그리스 토가에 나타난 고대 체육사(김현도, 2011)
4. 고대 올림픽 경기에 관한 연구(류준상)
5. 고대 그리스·로마 스타디움의 발전(김복희)
6. Biomechanics: Halteres used in ancient Olympic long jump(Alberto E. Minetti & Luca P. Ardigó, 2002)
7. Warfare in the Classical World(J. Warry, 1976)
8. http://schoolworkhelper.net
9. www.hellenicaworld.com
10. www.ancientworlds.net

11. 기타 : 백과사전, 주요 보도자료(사진 포함), 대구육상대회조직위원회공식 홈페이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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