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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축구, 지금 피로만 국적을 가르는 시대는 아니다

스포츠둥지 2018. 4. 19. 13:36

세계 축구, 지금 피로만 국적을 가르는 시대는 아니다

  

 

 지난 1961120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국가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어보라라는 역사적인 어록을 남겼다. 이 말은 미· 소간 동서 냉전 대결이 본격화되면서 개인보다는 국가에 대한 책임과 헌신을 먼저 앞세우는 시대적 산물의 결과로 나온 것이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케네디 대통령의 말에 국가적 자부심을 느끼며 월남전에서 군인으로 참전하고, ‘뉴프런티어 정책의 일원으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등 개발도상국에 교육, 의료 등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였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1968125일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국민교육헌장을 제정, 발표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은 당시 문교부에 의해 각 학교와 기관에 배부돼 학생들로 하여금 암기하도록 했다. 일본 군국주의 교육칙어를 모방했던 국민교육헌장은 국가주의와 집단주의적 가치를 듬뿍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사상, 하나의 시대정신이 지배하는 시대는 아니다. 절대적인 생각과 가치로는 세상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없다.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사회상을 이루는 세상이다. 특히 모든 것이 연결된 디지털 세계에서 절대적인 이성과 판단만 갖고는 외롭고 단절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국제스포츠계에서는 국가주의가 점차 퇴색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운동 선수들의 의식도 시대적인 변화의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국가보다는 개인의 성공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적인 성취에 전념하는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축구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최고 유망주 레온 베일리(20)는 당분간 출신국인 자메이카 대표선수보다는 소속팀인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베일리는 지금 내 관심은 오로지 소속팀이다. 축구선수로서 뛸 수 있는 기간은 제한적이다. 자메이카 국가대표팀을 바라보면서 나의 모든 삶을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201523세이하 대표팀에서 단 한차례 자메이카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그는 현재의 자신은 결코 자메이카가 만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의 생각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것만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메이카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해 그의 합류를 강력히 원하고 있으나 그의 합류는 불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12세때 자메이카의 열악한 축구환경에서 선수로서의 발전가능성에 회의를 품었던 그는 양아버지와 함께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이주해, 오스트리아 레드불 잘즈부르크 등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벨기에,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프로팀 문를 두드렸다. 레버쿠젠 스카우터는 지난 해 1월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개인기를 지닌 그의 무한한 장래성을 확인하고 입단계약을 맺었다. 베일리의 친구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 라임 스털링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자메이카와 영국에서 살았던 스털링은 자메이카를 향한 진한 고국애를 갖고 있지만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소속팀이 먼저라는데 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두 선수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앞세워 국가 유니폼을 바꿔 입으려는 이들도 있다. 브라질 출신으로 스페인 아들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에고 코스타는 브라질과 스페인 사이에서 국적 선택을 고민하고 있으며, 벨기에 출신 아드난 야누자이(스페인 레알 소시아다드)는 벨기에, 알바니아, 코소보, 세르비아, 잉글랜드 등 여러 국가대표팀 유니폼 중에서 어느 것을 입을 것인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가슴보다는 머리를 앞세워 자신의 이익에 맞는 국가대표팀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전 한국국가대표 안현수가 러시아로 국적을 옮겨 빅토르 안이라는 새 이름을 갖고 쇼트트랙 3관왕에 오른 것을 두고 민족 반역자’, ‘배신자라며 국내에서 많은 비난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안현수는 한국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어 러시아로 국적을 바뀌게 됐다는 개인적인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자신이 소속한 국가를 빛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인간의 가치와 품격을 높이는 개인주의적 사고를 존중해야 피만이 민족을 만들지 않는다는 세계화된 세상의 추세에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자메이카 출신의 레온 베일리(가운데). 독일 레버쿠젠서 뛰는 그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자메이카 대표팀보다 소속팀에 전념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_사진 뉴욕타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