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한국체육, 메달성적보다 재정자립이 중요하다.

스포츠둥지 2017. 9. 15. 11:24

글 / 김학수

 

 

  우리나라 체육 언론은 오랫동안 외형적 숫자에 집착하는 보도 성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성적을 근거로 스포츠의 성장을 평가했다. 우리나라 체육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올림픽 등에 처음에는 수십명의 소규모 선수단를 파견했다가 최근에는 수백명의 대규모 선수단를 참가시키는 정도가 규모가 커졌다. 국가별 순위도 사다리를 타듯 단계별로 껑충껑충 뛰어 올랐다. 대한민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한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 종합 4위에 오른 것을 기회로 세계 10위권의 엘리트체육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엘리트 체육이 성장하는 역사적 과정을 지켜본 체육 언론은 메달 숫자, 국가별 순위 등을 빠지지 않고 중요 대회때마다 보도하며 대한민국 체육의 우수성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독재, 권위주의 시대나 민주시대나 숫자를 근간으로 한 체육 언론의 보도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엘리트 체육은 성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숫자이면서도 체육행정의 돈문제에 대해서만은 뒷전으로 미뤄놓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인과는 달리 공정성과 순수성을 우선시 하는 체육인은 돈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는 고정된 인식이 한 몫 더했다. 그동안 체육단체들의 돈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데는 체육 언론들의 이러한 분위기가 많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해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적으로 전문체육 전담기관인 구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 전담기관인 국민생활체육회를 1년여만에 무리없이 통합시켰다. 문체부 관리들은 처음에는 통합문제가 꼬일 것을 전전긍긍하다가 의외로 잘 풀린 것에 놀라는 분위기였다. 이는 돈문제 보도를 소홀히 한 체육언론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체육인들이 돈에 대해 주체적인 의지를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

 

 

지난 해 구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한 대한체육회 이사회 모습.

 

 

  통합 대한체육회는 체육단체의 재정자립에 대한 고민이 없이 체육단체 통합을 이루다 보니 재정 규모는 커졌으나 재정자립도는 더욱 떨어지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다. 2015년 기준, 재정자립도에서 구 대한체육회는 4.6%, 국민생활체육회는 4.5%를 기록해 가맹경기단체(54.7%) 보다 훨씬 열악한 수준이었는데, 통합이후 상황은 더 나빠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그동안 재정의 90% 이상을 국고와 기금으로 의존하는 운영해 자율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관변 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5년 구 대한체육회의 연간 수입은 총 2,176억원이었으며, 수입금 중 국민체육진흥기금이 2,062억원으로 전체 수입의 95%를 차지했다. 자체 수입은 총 96억여원으로 총 수입의 4.6%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한체육회가 임원 선출, 규정및 제도 등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에서 고위직을 지낸 양재완 한국체대 초빙교수는 지난 8한국 체육단체의 재정건전성 및 재정 결정요인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을 발표, 주목을 끌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재정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대한민국 스포츠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육단체 통합의 시스템 선진화도 필요하지만 이보다는 체육단체의 재정자립이 더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연구를 하게됐다고 밝혔다.

 

  그는 체육단체가 자율성을 회복하고 자생력을 제고해 체육을 선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재정건전성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체육단체의 재정 자립도를 제고하기 위한 체육단체 재정현황 및 재정 결정요인을 분석해 문제점 및 이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는 연구는 매우 필요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체육단체의 재정 건정성 및 재정의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번 연구는 의미가 있고 통합 대한체육회 출범 직후에 이뤄져 시기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논문에서 한국과 비교 분석하기 위해 스포츠 선진국 미국과 일본의 재정 현황을 소개했다. 2015년 미국올림픽위원회의 수입은 14,127만달러(1,609억원)으로 수입의 대부분을 자체 수입(권리 수입, 라이선싱 로열티 수입, 중계권및 관련 수입)으로 충당해 재정자립도는 72.8%에 이른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교부금은 14백만달러로 전체 수입의 10.2%에 불과하다. 일본체육협회는 2014년 기준, 전체 경상수입이 43억엔(457억원)이었으며, 이 중 자체 수입이 24억엔(258억원)으로 재정자립도가 전체 경상수입의 56.4%를 차지했다. 일본체육협회는 재원확보를 위해 자체 수입사업과 마케팅 사업으로 충당했다. 일본올림픽위원회는 2014년 전체 예산 81억엔(867억원) 중 사업수익으로 35.4억원(372억원)을 충당하는 등 전체 예산의 60.1%를 자체 수입으로 마련했다.

 

  그는 우리나라 체육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체육단체가 적극적인 마케팅과 다양한 수익사업의 발굴을 통한 자체 수입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세 가지 방안을 제안했는데, 첫째 미국과 일본 등의 마케팅 프로그램을 벤치 마킹해 체육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재산권과 자산을 활용하는 다양한 수익사업 창출과 스폰서를 발굴하고, 둘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체육단체 재정자립도 제고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셋째 체육단체가 엘리트체육의 국제적 성과와 생활체육의 저변확대의 중요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홍보하며, 이를 재정확대와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랫동안 체육과 관련한 공직에 몸을 담고 다양한 현장 경험과 탄탄한 이론적 뒷받침을 통해 마련된 그의 체육단체 재정건전성 확보 방안이 앞으로 실제적으로 반영돼 한국이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갖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