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둥지 기자단

심판은 직업이라기보다는 명예스런 자리이다. - 2017 국제심판 역량강화 교육 개강식

스포츠둥지 2017. 6. 28. 17:26

 

글 / 권순찬, 김도현

 


  그동안 한국은 올림픽 무대에서 많은 편파판정이나 오심으로 피해를 입었다. 헐리우드 액션에 당한 김동성(쇼트트랙)을 비롯해 ‘눈물의 1초’ 신아람(펜싱), 소치에서 금메달을 놓친 피겨 여왕 김연아(피겨) 등이 그 예이다. 국제무대에서 편파판정과 오심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한국 국제심판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2017 국제심판 역량강화 교육 개강식 및 1차 교육이 지난 21일 올림픽파크텔 멜버른 홀에서 열렸다. 체육인재육성단 정병찬 단장은 인사말에서 펜싱선수로 활약하던 자신의 선수 시절을 회상하며 “선수시절에는 글로벌 능력이 없어 선후배 모두 힘들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체육인의 편견을 없애고 심판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했으면 좋겠다”며 이번 교육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개강식 후에 간단한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오후부터는 1박 2일의 일정으로 1차 교육을 시작하였다. 첫날 교육은 스포츠윤리 강의와 OST 워크숍으로 이루어졌다.

 

 

국제심판 역량강화 교육과정 단체사진. 사진출처 = 인재육성단.

 

 

  올해로 3회 째를 맞이한 국제심판 역량강화 교육은 한국 심판들의 글로벌 전문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한체육회의 공정한 판정문화 확산을 위한 클린심판 교육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차세대(국내심판) 과정의 22명, 리더(국제심판) 과정의 17명, 총 39명의 심판이 참여하는 이번 교육은 글로벌 역량 개발 교육과 영어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로벌 역량 개발 교육은 8차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내심판의 경우 PT능력, 커뮤니케이션, 스트레스 관리 등을 배우는 4차 교육까지 받게 되고 국제심판의 경우는 글로벌 마인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등을 배우는 8차 교육까지 받게 된다. 영어교육은 수준별로 나눠 120시간의 교육을 받는 집체교육과 전화영어로 이루어져 2018년 1월까지 교육과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출석률(30%), 발표성적(50%), 목적부합성(20%)의 평가기준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며 상위 18명 내외의 고득점자들은 해외탐방의 기회를 얻게 된다. 다음은 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체육인재육성단 양구석 과장과의 인터뷰이다.

 

 

- 국제심판 역량강화 사업을 추진하게 된 목적은 무엇인가요?
  ▲ 교육 사업하고 자격취득 사업 두 가지가 있어요. 취지는 국제 경쟁력을 가진 심판들을 양성하자는 것으로 동일합니다. 우리나라에 국제심판들이 없진 않지만 대다수의 많은 심판들이 언어능력이라든가 소통능력, 해외사람들과의 네트워킹 능력,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부족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가는데 그 이상으로 최고수준으로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한테 언어부터 해서 설득, 협상, 소통능력 같은 것들도 가르치고 해서 제대로 가서 제대로 역할도 하고 인정받아서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리고 우리가 피해를 입었을 때 그런 것들을 방지할 수 있는 양질의 심판들, 제대로 된 심판을 양성하자는 취지에요.

 

- 이번 사업이 3번째 과정인데 1번째와 2번째 사업 결과는 어떤가요?
  ▲ 지금 국내심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국제심판을 취득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되고, 실제로 그렇게 취득을 하고 있어요. 국제심판들 중에도 교육을 받고 자신감을 얻고 또 영어도 되고 하니까 이제 위로 승급을 하는 케이스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희의 궁극적인 목적은 심판위원장까지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사업자체가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아직 거기까지는 무리가 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심판위원장이라고 하면 그 경기에 배정되는 심판들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한 종목에 ‘전 세계에서 20명 뽑는다’ 그럼 거기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에 들어가기잖아요. 그런데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거죠. 국제대회나 이런 데 나갔을 때 그 나라에 심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다른 나라의 심판들이 그 선수를 해석하는 게 조금은 달라져요. 100% 객관적일 수가 없잖아요. 예를 들어서 올림픽 하는데 A,B,C란 나라가 있는데 D라는 심판이 없는 나라에서 선수가 나왔다면 이 선수한테는 좀 더 쉽게 뭔가 해석을 하고 하지만 A나 B같은 심판그룹에 있는 사람들이 속한 선수들을 볼 때는 좀 더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되죠. 왜냐하면 자기가 그랬다가 자국선수들이 보복을 당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일부로 견제를 안 하려고 하지만 그게 다 영향이 있는 거에요.

 

- 사업을 통한 기대효과는 무엇인가요?
  ▲ 우리가 스포츠 강국, 선진국이 되려면 한 분야에서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뛰어난 선수가 한명이 있으면 그 밑에 선수들도 차곡차곡 있어야 되는 부분들이고, 그 외에 경기를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 심판들이나 행정가들이나 이런 사람들도 차곡차곡 선진국이라고 불릴만한 인적자원들이 다 갖춰져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단기적으로 봤을 때 한, 두 명 배출하는 것보다 전반적으로 더 끌어올려서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인재가 풍요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 우리의 이상적인 목표이죠.

 

- 심판이 되고자 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은?
  ▲ 심판의 대다수가 직업이 되지 못해요. 먹고 살 수 있는 직업군이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경기단위로 수당을 받고 하는 것이지만 대다수의 심판들을 만나보고 얘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 어떤 명예, 프라이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불이익을 당했던 경험들을 ‘내가 바른 심판이 되어서 바로잡고 이 바닥을 제대로 걸어가야겠다’ 이런 동기를 갖고 시작하는 분들이 되게 많고요. 선수로서는 올림픽 무대에 못섰지만, 심판으로서 서보고 싶다. 그런 영역에 대한 의무감, 명예, 보람을 가지고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성공이나 돈을 쫓는다고 하면 그건 아니다 과감히 말씀 드리고요. 전 세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그 종목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이런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과감히 도전하세요. 여러 가지 재정지원이나 이런 교육들이 있으니까 그런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면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많이 안 알려져 있지만 심판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요. 경기를 망치고 살리고 하는 것은 경기장에서는 심판의 역할이거든요. 어떤 심판이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경기가 망할 수도 있는 것이고 진짜 별로인 경기도 재밌게 끌어 갈 수 있는 거에요. 경기의 흐름과 속도, 분위기를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심판의 역할이거든요. 이런 중요한 것, 그리고 짜릿함 이런 것들을 느끼고 싶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직업보다는 명예스런 자리라고 생각해요.
 

 

자기소개하는 심판들.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39명의 심판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수나 지도자 출신 외에도 생활체육인, 학교 강사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심판들로 이루어져 있다. 종목도 축구, 농구 같은 인기 종목부터 봅슬레이, 다이빙, 철인3종, 근대5종 등 쉽게 접하기 힘든 종목까지 다양한 종목의 심판들이 모였다. 나이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종목도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한국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심판으로써의 역량을 키우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심판 3명을 만나 인터뷰를 나눠보았다.

 

 

<이지애 차세대 (국내심판)/종목: 리듬체조/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


- 심판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사실 심판을 하게 된 것은 8년 전이거든요, 대학 졸업하고 심판(자격증)을 취득을 해서 국내심판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동시에 리듬체조 지도자로도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지도자로 활동을 더 많이 했었는데 선수들을 데리고 국제대회를 많이 참가를 하다 보니까, 리듬체조 종목자체가 사격이나 육상처럼 기록경기가 아니고 사람이 점수를 주게 되거든요. 유럽경기를 참여를 했을 때 리듬체조 자체가 유럽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같은 난도를 수행을 하고도 정말 월등하지 않으면 유럽 사람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도자 입장에서 그런 것들을 봤을 때, 굉장히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아서. 그래서 그런 환경에 놓여 있을 때, 한국의 국제심판을 보니 명수가 너무 적더라고요.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10명까지 최대 리듬체조 국제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고 올해는 더 많이 취득을 할 수 있는데, 저희는 고작해야 5명? 국제심판이 이정도 밖에 없더라고요. 그러면 내가 한 번 공부를 해보자. 그래서 저는 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 본인이나 주변동료가 편파판정을 당해본 사례가 있습니까?
  ▲ 제가 사실 선수시절 때는 대표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니까 현재 리듬체조에 있어서 러시아가 굉장히 선진국이거든요, 그래서 러시아 코치들이 각 나라에 많이 가있어요. 그런데 한국 같은 경우는 러시아 코치들이 그렇게 몇 년 씩 와있어서 상주하고 그러진 않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땐 몰랐는데 그때 생각을 해보니까 러시아코치가 와있는 나라는 조금 더 점수가 높았던 것 같더라고요. 제가 가르치고 있는 선수 또한, 작년 같은 경우에는 제가 주니어 대표선수들을 데리고 그리스에서 열리는 경기도 참여를 했었고, 그 다음에 미스 발렌타인이라는 경기를 참여를 했는데, 종합경기 예선경기를 치룰 때 유럽선수들은 조금 놓쳐도 점수가 별로 깎이지 않는데 저희는 아주 조그만 실수를 해도 점수가 1점, 2점 차이가 나고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국제심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국제심판이 된다면 당찬 포부한번 말씀해 주세요.
  ▲ 국제심판을 취득을 한다면, 4급부터 시작해야하기 때문에 급수도 일단 올려야 되겠지만, 2020년은 너무 가깝고 2024년도에는 올림픽 심판으로 한번 활동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지수 차세대 (국내심판)/종목: 축구/최연소 참가자>


- 프로선수생활을 하시다가 왜 지도자를 안 하시고 심판을 생각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만둔 이유가 지도자들의 횡포 때문이었습니다. 축구 쪽에 다시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우연찮게 프로심판님을 뵙게 돼서 그분의 어떤 노하우를 듣다보니까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작을 했죠.

 

- 지도자의 횡포가 무엇이었나요?
  ▲ 제가 고등학교 때 독일로 프로계약을 하고 가게 되었는데요, 한국에서는 프로팀이 유스 산하에 있었거든요. 거기서 불이익을 겪었어요.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는데 2학년 때 갑자기 진학상담을 빌미로 돈을 좀 요구하셔가지고 저는 이제 (한국에서) 가계약처럼 프로계약을 이미 약속을 받은 상태여서, 그 유스로 올라가기로 이미 얘기가 돼있었는데 감독님이 새로 오시면서 그런 부분을 모르고 저를 배제하기 시작하면서 그때 이제 틀어지고 독일로 나가게 됐어요. 독일에서 또 프로계약을 하게 됐는데, 이적동의서 발급을 안 해줘 가지고, 한 1년 정도만 팀 훈련을 하다가 제가 못 버티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돌아와서는 이 팀 저 팀을 전전하다가 실력이 안 늘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된 것 같아요. 가슴 아프다면 아픈데요, 즐거운 추억이기도 하고요. (웃음)

 

- 국제심판이 된다면 당찬 포부 한번 말씀해 주세요.
  ▲ 일단 국제심판이 돼야겠죠? 축구는 되기가 어려워요. 프로가 돼야지 국제심판을 볼 수 있는 자격이 되고. 그런데 우연찮게 국제심판을 양성하는 프로젝트에 뽑혀서 코스를 이수하고 있거든요. 이 코스를 잘 이수해서 국제심판으로 가는 빠른 길이 됐으면 좋겠고요. 국제심판이 되면 아시안컵이든 월드컵이든 나갈 수 있는 모든 큰 대회는 다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고요. 그래서 열심히 해야 될 거 같아요!

 

 

<한은숙 리더 (국제심판)/종목: 봅슬레이스켈레톤/학교강사 출신>


- 심판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2015년 광주에 거주할 때,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했었어요. 제가 그런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서 자원봉사를 지원하게 됐는데, 하다보니까 자원봉사가 아니라 외국어 통역 쪽으로 갈 기회가 생겼어요. 교육을 많이 잘 해주셔서 제가 최종으로는 네덜란드 아타세에 선발이 됐는데 학교 측에서는 일주일 휴가를 내는게 어려웠던 거에요. 그래서 제가 어차피 또 반년 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되는 상황이라서, 그거를(학교 강사) 그냥 마무리하고 편안하게 행사를 참여하려고 국제대회를 나가봤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선수들과 운동하고 이런 것을 전혀 모르고 살다가 너무 재밌고 굉장히 신선한 충격인데, 거기서 같이 통역하시는 분 중에 신성식 선생님이라고 계시는데 루지 국제심판이세요. 그분이 “이거 끝나면 뭐 할거냐” 그래서 제가 “백수입니다” 그랬더니 국제양성과정이 있는데 신청해보라고 하셔서 저는 스포츠인도 아니고 아는 것도 없다고 그랬더니 일단 영어로 강의를 한다니까 제가 전공이 영어니까 시간이 있는데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루지는 교육이 없었고 그때 마침 봅슬레이스켈레톤이 그 무렵에 있었어요. 이거를 처음에는 아주 심플한 생각으로 ‘영어 잘 들리나’ 갔다가 시험을 잘 봤나 봐요. 그래서 국내심판이 되었고, 그 안에서 해외로 핵심임원 후보자들 6명을 독일로 보내는 그런 기회가 그 마지막교육에 있었거든요. 제가 그 6명 중에 들어간 거죠. 그래서 제가 독일월드컵에 참여하면서 경기에 대해서 저희들이 운영을 처음으로 실제 트랙을 보고 배운 거 에요. 아예 책으로만 공부했던 봅슬레이스켈레톤을. 우리나라에 트랙도 완성이 되기 전이거든요. 그래서 실제 경기가 되어지는 것, 그리고 저희들이 임무를 맡아서 나중에 평창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되기 때문에 전반적인 것들을 애기처럼 처음으로 배운 거죠. 거기서 해외국제심판시험을 봤는데 저희들이 다 합격을 했어요. 그래서 돌아와서는 이제 완성이 되었고, 올해 평창에서 월드컵이 열렸어요. 저희들이 핵심 경기임원이 되고, 그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평창에서는 운영을 직접 하는 거죠. 제가 생각지도 못했지만 이끌림을 받아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저한테 이런 기회가 있었던 것 같아요.

 

- 자신의 최종 꿈을 알려주세요.
  ▲ 아직은 아시아 쪽에서 여자심판도 없고 유럽이나 미국이 강세지만 평창올림픽 이후 저희가 경기운영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요. 일단은 국제심판자격을 취득했지만, 밖에서는 아직은 저희들의 역량을 드러낼 순 없었거든요. 여태까지 저희가 파견교육 받으면서 배웠던 것을 가지고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앞으로는 저희들이 국제심판으로서 첫 세대가 되기 때문에 정말 멋있게 국제심판으로 활동을 하면서 저희가 선수출신은 아니지만 뭔가 이끌어주는 조그만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활동할 것입니다. 이 교육을 받는 이유도 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회도 없거든요. 제가 배워서 전달해주려고 해요. 그래서 이 교육도 신청하고 받게 되었습니다.

 

 

개강식 모습.

 

  심판이란 직업은 직업군에 넣기 힘들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프로 심판이 아닌 이상 경기 당 수당으로 만원~5만 원 가량을 받고 큰 돈을 받지 못함에도 잘못된 판정에 대한 비난을 받는 등 부담감도 큰 직업이다. 그렇기에 심판이란 직업은 열정이 없이는 할 수 없다. 이번 교육에 참석하는 심판들 중에도 교육을 받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오로지 한국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열정을 가지고 교육을 받는 것이다. 이번에 교육에 참가하는 39명의 심판들이 모두 무사히 수료한 후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빛내는 명심판이 되어 한국 스포츠의 발전을 이끌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팬들과 선수들에게 무시 받거나 홀대 당하는 심판들에 대한 존중과 대우를 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