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차’와 ‘하철이’, 한 방을 쓰기에는 아직 멀었다
글 / 문영광 (스포츠둥지 기자)
※글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부득이하게 표준어가 아닌 ‘잔차’와 ‘하철이’라는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점 양해바랍니다.
쓸모 있는 ‘잔차’
‘잔차’. 자전차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최근 급증한 자출족들 사이에서 자전거라는 말 대신 많이 쓰이는 애칭이다. 자전차라는 말은 자전거의 잘못된 표기이지만 예전부터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많이 썼다.
잔차는 여러모로 쓸모 있다. 건강도 챙길 수 있고 교통비도 절감할 수 있다. 잔차와 친해진 사람들은 피로를 가중시키던 출퇴근길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신을 단련하는 출퇴근길로 변모하는 ‘힐링’을 체험했다. 이 놀라운 체험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자출족들이 생겨났다.
대중교통마저 포화상태가 되자 차세대 출퇴근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잔차다. 지자체에서도 이를 반기며 너나 할 것 없이 자전거 도로를 신설하고 개선했다. 2008년에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차(車)로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잔차는 자동차와 동등한 자격으로 차로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잔차의 장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09년부터는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에도 공식적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불편한 진실
‘잔차’와 ‘하철이’(지하철의 줄인 말)가 만나면서 사람들은 환호했다. 잘만 만난다면 자전거 이용률이 많이 올라가리라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도 자전거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초석이 될 것 같았다. 출퇴근 거리가 멀거나 출퇴근 경로 상에 자전거 도로 여건이 좋지 않았던 자출족들은 중간에 부득이하게 전철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차와 하철이의 만남은 몇 년 째 제자리걸음이다.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가 안 보인다. 모순된 정책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10월부터 자전거 출퇴근을 적극 권장하며 지하철 1~8호선 전 노선에 걸쳐 일반 자전거를 휴대한 채 탑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책을 일요일 및 공휴일에 한해 시범적으로 시행했다. 자전거 출퇴근을 권장한다면서 일요일 및 공휴일에만 적용하는 이 불편한 진실. 당초 2010년 5월부터는 토요일, 올해부터는 평일에도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고 이용 가능하도록 순차적으로 허용할 계획이었지만 2013년이 멀지 않은 현재까지도 변한 것은 없다.
자전거 전용칸이 설치된 전동차 객실 ⓒ 서울도시철도공사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의 정책 시행과 동시에 좌석 대신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한 ‘자전거 전용칸‘을 제작해 1~8호선 지하철 총 425편성 중 40편성에 적용했다. 그러나 편성된 열차의 앞, 뒤 1량씩 총 80량을 만들어 시행 중인 자전거 전용칸은 웬만해서는 타기가 힘들다는 후문이다. 10대 중 1대 꼴인 전용칸이 있는 열차를 기다려 타느니 따가운 눈총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반열차를 타는 편이 낫다.
자전거의 보관 역시 큰 문제다. 자전거의 이용을 권장하지만 보관할 곳은 없다. 대부분의 자출족들은 자전거를 분실할까 두려워 회사 건물 내부나 회사 주차장 한 쪽에 눈치를 보며 세워둔다. 지하철 역사 내부나 주변에 안전이 보장되는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면 자전거 이용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동작구에서는 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에 총 112대의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자전거 주차장을 만들고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서울 5~8호선에서는 몇 개의 역내에 사물함 형식의 안전한 자전거 보관소를 설치하고 운영 중에 있다.
자전거 이용자에 비해 보관 시설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시작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한두 곳에 국한되지 않고 높아진 자전거 이용률에 걸맞은 보관 시설의 확충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산뜻하다! 고려대역 자전거 보관함 ⓒ 서울도시철도공사
지하철 자전거 이용 가이드
잔차와 하철이가 친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자출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자출족들의 노하우를 모아보았다. ‘접이식 자전거’는 전국의 모든 노선과 요일, 시간에 관계없이 모든 전동열차에서 365일 휴대승차가 가능하다. 접이식 자전거는 접었을 경우 ‘지하철 수하물 운송규정’에 명시된 수하물 허용 규격인 158cm, 32Kg 범주 내에 들기 때문에 언제나 휴대할 수 있다.
이용자가 가장 많은 서울지하철 1~8호선의 경우에는 일요일 및 공휴일에만 일반 자전거 휴대승차가 가능하다. 이때, 1~4호선은 전일 이용가능하며 5~8호선은 10시에서 6시 사이에만 가능하다. 모든 칸이 아닌 열차의 맨 앞, 맨 뒤 칸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은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서울 외 구간에서는 자전거 이용에 관대한 편이다. 경춘선(상봉~춘천)과 중앙선(용산~용문), 경의선(DMC~문산)과 공항철도(김포공항~공항화물청사)에서는 직통열차를 제외하고 모든 열차를 평일에도 자전거를 휴대할 수 있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하여 토요일에도 자전거를 휴대할 수 있는 노선은 분당선(왕십리~기흥), 경인선(구로~인천), 경원선(청량리~동두천), 경부·장항선(서울역~신창), 공항철도(서울역~공항화물청사),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부산지하철 등이다.
최근 신설된 서울 지하철 9호선과 신분당선은 모든 요일 휴대가 불가능하다.
이밖에 자전거 휴대승차 관련 자세한 사항은 서울메트로(www.seoulmetro.co.kr)와 코레일(www.korail.com),
서울도시철도공사(www.smrt.co.kr)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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