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은 훈련인가 교육인가?
글/최의창 (서울대학교 교수)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사람은 원래 선한가 악한가?>라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짐작컨대 당신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사람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는 어중간한 대답을 내어놓을 것이다. 특히 당신의 나이가 중년을 넘어서는 경우 이러한 대답을 선택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선하냐 혹은 악하냐 중 하나를 택하는 “냐냐주의적 대답”이 아니라,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는,
양자 모두를 택하는 “도도주의적 대답”을 내어놓는 것이다.
이러한 중도주의적 입장(혹은 총체주의적 입장)은 기회주의적 절충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과 경험을 통해 얻은 실천적 지혜다. 사람이란 살아보고 겪어보면 대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면서도 악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선악이란 것이 한 사람 안에서 얽혀 섞여지면서 점차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한쪽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성향을 띠게 됨을 목격하게 된다. 즉, 선악이 반반씩이라는 어정쩡한 중간 입장에서 벗어나, 개인마다 선과 악이 역동적으로 혼융된 상태에서 조금 더 또는 덜 부여되어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체육의 장면에서도 있어서도 이러한 절충적, 중도적 지혜가 생겨나는 문제가 있다. “코칭”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 <코칭은 훈련인가 교육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코칭은 “운동을 가르치는 지도활동”을 말한다. 운동을 가르치는 활동이 원래가 “훈련”적 성격을 띠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적 특징을 갖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체육에 있어서 운동의 지도는 가장 빈번하고, 또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운동을 할 수 있게 되려면 그것을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가르침, 즉 운동(스포츠, 엑서사이즈, 댄스 등) 지도는 훈련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교육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혹은, 훈련이면서도 교육인가?
우선, 훈련과 교육은 서로 다른 활동인가? 서로 같지 않아야만 질문이 성립되고 고민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칭은 운동을 잘 하도록 지도하는 일이다. 운동을 잘 한다는 것은 기술의 수준을 높이고 경기를 전술적으로 잘 펼쳐 상대를 능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일은 훈련(訓練, training)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활동이다. 지속적 반복과 연마를 통한 기예의 숙달을 도모하는 일이다. 기량을 향상시키고 성과를 올리는 육체적, 정신적 단련의 활동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코칭은 기술지도를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코칭은 선수로 하여금 훈련과 시합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자신과 운동자체에 대한 깨달음을 갖도록 하는 일이다. 이러한 내면적 깨달음을 통해서 스스로를 변모시키고 그것을 운동의 장소와 삶의 장면들에서 활용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교육(敎育, education)이라고 불리운다.
운동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성격상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활동들이 현실에서는, 역설적이게도, 한꺼번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운동을 가르치는 일은 선수로 하여금 기량을 향상시키면서 동시에 내면을 함양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기술을 배우면서 그 과정 중에 내면에 변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전자는 주로 명시적이고 의도적으로 진행되는 데에 반하여, 후자는 의도적이기는 하되 묵지적, 비형식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선수들은 운동기능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자신의 덕성, 지성, 감성, 그리고 영성까지도 함께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명시적이면서 동시에 묵시적으로, 의도적이면서 동시에 비의도적으로. 코칭은 훈련행위이면서 동시에 교육행위인 것이다.
이리하여 당신은 코칭의 본질에 대해서도 냐냐주의가 아니라 도도주의적 이해를 갖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과 사고와 성향에 따라서 훈련과 교육의 비율에 대한 개인적 판단을 갖게 된다 ― 훈련이 좀 더 중요한 코칭론을 택하던지 아니면 교육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는 코칭론을 택하던지. 스포츠교육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훈련부분보다는 교육부분이 훨씬 더 커다란 역할을 차지하는 코칭개념을 선호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에게 스포츠교육이 훈련인가 교육인가 묻는다면, 나의 반응은 스포츠코칭은 (스포츠훈련이기도 하지만) 스포츠교육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 입장은 절충이고 중도이되, 편향적 중도인 것이다. 둘 모두를 인정하되 그냥 가운데 멍하니 서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으로 더 가까이 가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실 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대부분의 운동감독(코치)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UCLA대학 농구감독 존 우든, 워싱턴디씨 프로미식축구감독 토니 던지, 한국 프로야구감독 이광환 등은 운동이 기술발휘를 넘어서 자기발견과 자아실현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목소리로, 뛰어난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운동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운동의 최고 목표라면 코칭은 훈련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운동의 지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변모에까지 다다른다. 코칭은 선수의 시합승리를 위한 기술과 심리만이 아니라, 삶의 통찰을 위한 안목과 심성까지도 얻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차원에까지 영향을 주어야만 코칭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이 그것을 성취하는가는 지도하는 코치의 역량과 경륜과 지혜의 수준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스포츠 현장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백전의 노장들만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니다. 최근 체육학자 가운데 코칭을 가장 직접적이고 오랫동안 연구해온 스포츠심리학자들도 이같은 자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이들은 교육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코칭이 운동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적 성격의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학술적으로 인정하고 그 대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제안된 아이디어가 선수중심 코칭, 총체적 코칭, 긍정적 코칭과 같은 개념들이다. 코칭은 기술훈련을 넘어서 선수의 전인적 발달을 도모하는 총체적 지도행위로서 인식되고 있다. 운동 가르치기는 선수의 기량적 발달만이 아니라 인성적 발전도 도모하는 수준 높은 노력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선수가 몸과 기술만이 아니라, 감성, 덕성, 영성 등의 측면에서도 발전이 따라주어야 운동도 훨씬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스포츠교육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코칭은 기술훈련쪽 방향으로 다가서기 보다는 인간교육의 성향을 더욱 강하게 띠어야 한다. 운동 가르치기는 기술발달과 인간성숙의 두 가지를 모두 이루어낼 수 있는 활동이지만, 인간성장의 방향으로 좀 더 강조되어 실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경쟁이 매우 심한 수준과 상황에서의 운동지도는 당연히 훈련의 성격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패배는 승리보다 뼈아프기 때문이다. 기술연습과 전술연마를 통해서 이기는 방법을 터득해야하는 일이 당장에 꺼야하는 발등의 불일 것이다. 훈련은 무조건 이기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다. 어떻게 이기느냐는 기술적 차원에서만 중요시된다. 어떤 방식으로 이번 상대를 대하고, 어떤 방법으로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 어떤 방도로 막힌 상태를 뚫을 것인지를 해결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훈련이다. 훈련은 선수의 기량과 책략만을 자극하는 활동이다.
반면에, 교육은 어떻게 이기느냐의 이슈에 대해서 규범적 차원에서 대처하도록 돕는다. 이기되 비겁하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멋있게 이기는 것, 지되 비루하게 지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지는 것을 고민하도록 만든다. 더 나아가, 무엇이 이기는 것인지, 무엇이 지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지성을 갖도록 한다. 운동 배우는 것에 담겨진 규범적 측면(올바로 운동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뚜렷한 생각)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자신의 삶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자기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운동관련된 모든 상황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에 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구하도록 한다. 교육은 선수의 지성, 감성, 덕성, 그리고 영성을 살찌우는 활동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코칭은 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훈련과 교육이 한꺼번에 전개되도록 하는 일이다. 그래서 코칭은 어려운 것이다. 코칭이 훈련만으로 혹은 교육만으로 이루어졌다면 쉬웠을 것이다. 철저한 기술연습을 통해서 경기력만 향상시키거나, 승리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제쳐두고 자기성찰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은 것이다. 훈련쪽으로만 내치닫거나 교육쪽으로만 내달리는 것은 몸도 편하고 맘도 편하다. 그러나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이 두 가지 일,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이 두 가지 노력을 하나의 활동 속에서 실천하고 실현해내는 것은 보통의 난이도 수준을 넘어서는 매우 고난도의 능력과 자질을 필요로 한다.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해지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는 해도, 우리의 존경하는 운동코치, 스포츠감독들이 분명히 증언하고 강하게 주장하듯, 코치라는 사람은 결국 훈련을 실천하는 와중에 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운동을 가르치는 일은 기술과 전술을 지도하는 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종적으로 무엇을 위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그 기술과 전술을 가르치는가에 따라 그 일은 단지 훈련에 멈추든지 아니면 교육으로 진전되는지가 결정된다. 내가 그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사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기술지도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애써서 하는 일이 보다 더 훌륭한 것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동가홍상, 일석이조의 옛 금언도 있지 않은가? 운동 가르치는 일은 결국 훈련과 교육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므로, 기술지도를 넘어 인간형성에까지 이르기를 진심으로 희망할 것이다. 그래야만 코치로서 나는 훈련사가 아니라 교육자로 우뚝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훈련사도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훈련사를 넘어 교육자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선수의 육체만이 아니라 선수의 영혼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싶기 때문이다. 코칭을 실천하는 그대, 당신은 어떤이가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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