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우리 (스포츠둥지 기자)
90년대 후반 부산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성동일은 부산연고의 프로야구팀 스카우터로 등장한다. 덕분에 당시 고교야구의 모습이 드라마 곳곳에 등장했는데 특히 1998년에 고교 1학년이었던 부산고의 추신수와 경남고의 이대호가 등장한 장면은 리얼리티의 진수로 꼽히며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었다.
실제로 90년대 후반 두 선수는 부산에서 유명한 고교야구 선수였다. 1학년 때부터 주목 받던 추신수와 이대호는 각 학교의 에이스로 성장하였고 2000년 캐나다에서 열린 제 1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의 멤버로도 선발되었다. 둘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둘은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대스타로 성장하였고 이대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추신수는 2010년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차지하며 청소년 대표 때의 영광을 재현하기도 했다.
제 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덕아웃에 대기중인 윤대영(좌)과 송준석(우) ©서우리
그들이 고교 3학년이었던 2000년으로부터 12년이 흐른 올해, 제2의 이대호와 추신수를 꿈꾸는 청소년 야구대표팀의 두 선수가 있다. 제 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전경기에 4번 타자로 출장하여 팀의 유일한 홈런까지 기록한 진흥고의 윤대영(3학년, 외야수)과 팀 내 최다안타 1위와 더불어 한국 팀에서 유일하게 대회 올스타 멤버에도 선정된 장충고 송준석(3학년, 외야수)이 그 주인공이다. 대회 내내 좋은 활약을 보여 준 두 선수는 실제로 이대호와 추신수를 롤모델로 꼽기도 했다.
첫경기 타점-득점 메이커,
미국전 만루에서 싹쓸이 2루타, 마지막 한일전에선 홈런포까지
이번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윤대영은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외조카로 더 익숙한 선수였다. 그러나 대회 내내 든든한 4번 타자의 모습을 보이며 더 이상 이종범의 조카가 아닌 한국 청소년 대표팀의 해결사 윤대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청소년 대표팀의 첫 경기였던 베네수엘라전부터 팀의 첫타점과 센스있는 주루플레이로 추가 득점을 만들며 팀의 2점을 모두 이끌었다. 이어 두 번째 경기 미국전에서는 2사 만루상황에서 큼직한 싹쓸이 2루타를 날리며 해결사의 면모를 드러냈고, 마지막 경기였던 5-6위 결정전(한일전)에서 홈런을 쏘아 올리며 차세대 거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윤대영은 지난 ‘2013 프로야구 신인 지명회의’에서 NC다이노스의 4라운드에 지명되어 내년 시즌부터 NC에서 뛰게 된다. 현재는 고교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전이 남아있어 추석연휴도 반납한 채 매일 학교에 나가 훈련을 하고 있다는 그는 “체전 끝나자마자 NC에 합류해야 해서 휴일도 없어요. 대표팀 합류 이후로 딱 이틀밖에 못 쉬었다니까요.”라며 푸념하기도 했지만 이내 “그래도 대표팀도 경험하고 제가 가고 싶었던 NC에 가게 된 걸 생각하면 다 기쁜 일이죠”라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그에게 야구와 국가대표는 어떤 의미일까? 다음은 윤대영과의 일문일답이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혹시 국가대표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해본 적 있나.
초등학교 3학년 때 공부하기 싫어서 매일 밖에 나가 야구만 하고 놀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외할머니(이종범의 어머니이기도 한) 께서 안되겠다고 운동시켜야겠다고 하시며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데려가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죠.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어요. 제가 야구를 해서 성공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냥 재미있고 좋아서 한 건데 목숨 걸고 덤비지 않아도 항상 운이 좋아서 결과가 잘 나왔고. 이번에 청소년 대표가 된 것도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외삼촌인 이종범 선수가 국가대표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었나.
그 때 저는 너무 어렸어요. 외삼촌이 WBC에서 활약했던 때가 저 초등학교 6학년 때 였을 거에요. 그래서 저렇게 되고 싶다 라는 생각보다 그냥 한없이 멋있다라는 생각 밖에 안 했던 것 같아요.
처음 청소년 대표 상비군에 뽑혔을 때와 대표팀 확정 후 첫 소집 날의 심정은 어땠나.
저는 상비군 갔을 때도 전반기에 안 좋은 모습이 많았고 상비군에서도 잘하지 못해서 기대 없이 다녀왔어요. 그런데 감독님(이정훈 감독)께서 제가 작년 국가대표에서 했던 걸 보고 믿어주셨던 거 같아요. (윤대영은 지난 해 고교야구 아시아시리즈 한국대표팀에도 참여하여 활약했었다.) 뽑히고 나서 감독님께 전화 드렸는데 “딴 건 필요 없다. 그냥 열심히 해라 너 믿고 뽑은 거니까” 라고 하시더라고요. 감사했죠. 부모님께서도 너는 운이 따른다고 돈 주고도 못 사는 자리인데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첫 소집 때도 꼭 선발에 들어야겠다거나 그런 생각 없이 그냥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생각이 많으면 잘 안되니까 다같이 즐겁게 하자고 다짐했죠. (실제로 윤대영은 합숙기간 내내 청소년 대표팀의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다.)
청소년 대표팀 합숙 훈련지에서 그라운드를 정리 중인 윤대영 ©서우리
이번 대회 여러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했는데 본인이 생각한 제일 잘한 경기는 무엇인가.
첫 경기 베네수엘라전이요. 첫 경기에 못하면 자신감이나 페이스가 떨어지니까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타 못 쳐도 무조건 자신있게 하자고 생각했는데 첫 타점이랑 역전 점수까지 주루 플레이로 제가 득점해서 정말 좋았어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겨서 그 다음경기들도 잘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두 번째 경기인 미국전에서는 만루에서 쐐기 3타점 2루타를 치고 덕아웃에 손짓하는걸 봤는데.
그 때 타석에 나가기 전에 애들이랑 약속했어요. 내가 칠 거다 무조건 칠 거니까 보고 있으라고. 마지막에 일본전 때도 홈런치고 온다고 기다리라고 했거든요. 뭔가 기분이 칠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진짜 한 방 딱 치고 나서 보니까 애들이랑 눈이 딱 맞아가지고 손짓을 했죠. 다른 선수들도 “야 너 진짜 해결사다. 진짜 필요할 때 쳐 준다”고 해주더라고요. 만루였어도 긴장은 안됐고 오히려 홈런인줄 알았는데 그게 펜스 맞고 나와서 아쉬웠죠. 만약에 넘어갔으면 분위기가 더 좋았을 텐데 그게 좀 아쉬워요.
마지막에 다시 일본과 만나서 부담은 없었나. 마지막 타석에 홈런을 친 비결은 무엇이었나.
다른 말 하나도 필요 없이 무조건 잘하자 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선수들끼리도 실수 없이 자신감 있게 하자고 다짐했죠. TV 중계도 나오고 많은 분들이 응원하니까 소심하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자고 생각했어요. 홈런은 그 때 제가 9회초 선두타자였는데 저희 수비 끝나고 와서 보호대랑 장갑을 찰 때부터 느낌이 좋고 마음이 편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홈런치고 올게”라고 장난처럼 말했거든요. 어차피 마지막 타석이고 이기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홈런 하나 치려고 홈런스윙으로 노리고 있었어요. 근데 또 너무 잘 맞아서 안 넘어가는 줄 알고 열심히 뛰었는데 심판이 팔을 돌리더라고요. 그래서 아 넘어갔구나 해서 그때부터 신나게 돌았죠. 그냥 장난처럼 한 말이 진짜 이뤄져서 너무 좋았어요.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국가대표로 뛴다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다른 야구하는 친구들이 많이 물어봐요. 그러면서 그게 쉬운 줄 알거든요. 그냥 똑같이 하면 되는거 아니냐 하는데. 사실 마음가짐부터 완전 달라져요. ‘내 몸 하나 다쳐도 팀만 이길 수 있다면 좋다.’ 딱 이거에요. 진짜 학교 유니폼 입고 뛸 때랑은 전혀 달라요. 훨씬 책임감을 갖고 뛰게 되죠. 근데 이렇게 한번 달기도 어려운 태극기를 두 번이나 달아서 진짜 좋아요. 부모님도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시고. 유니폼도 소중히 모시고 있죠. 주변에서 많이들 달라고 하는데 아무도 안주고 잘 모셔둘 거에요.
호주전에서 타격을 하고 있는 윤대영 ©제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공식 홈페이지
국가대표 경험이 본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나.
야구 쪽으로는 시각이 넓어진 거요. 제가 살면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야구해 볼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여러 선수들이 야구하는 것도 보고 또 큰 대회니까 다양한 투구폼 등도 익히고 상황대처 등도 배울 수 있었어요. 야구 외적으로는 야구 잘하는 선수들끼리만 모여서 경기를 했다는 경험이 너무 재미있었고 이런 인연을 얻은 것이 좋아요. 이게 좋아서 프로에 가서도 또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로 다른 팀인데도 국가대표였던 선수들끼리 경기 전에 서로 친하게 지내고 하는 게 되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이번 대표팀 선수들끼리 우리도 그러자고 얘기했어요.
이제 프로에 합류하면 진짜 야구인생의 시작인데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제가 외삼촌 은퇴식을 갔었거든요. (윤대영의 외삼촌인 전 KIA타이거즈 소속 이종범은 지난 5월 광주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근데 진짜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구단에서도 그렇고 팬들도 경기가 끝났는데도 아무도 안 나가고 다들 울면서 아쉬워하고 하는 걸 보고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한 팀에서 오랫동안 외삼촌 같은 존재로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NC에서 그런 삼촌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그냥 야구 하는 거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외삼촌은 잘하든 못하든 팬이 많잖아요. 저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제가 잘해도 못해도 항상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그런 선수.
앞으로 프로선수로서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다면.
타자로서 스윙만 보면 이대호 선배님을 닮고 싶어요. 제 스윙이 아직 부드럽지 못해서 그렇게 부드럽게 스윙 하는 걸 배우고 싶어요. 그런데 전반적인 부분은 전준우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요. 잘 살아 나가고 잘 달리는 수위타자가 되고 싶어요. 무조건 홈런 많이 치는 타자보다 팀에 기여도 높은 필요한 타격을 잘하는 그런 타자요. 제가 치는 스타일이 박병호 선배님이랑 좀 비슷한데 요즘에 되게 잘 치셔서 보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윤대영에게 ‘야구란 OOO다’을 채운다면.
‘윤대영에게 야구는 드라마다.’ 사실 막장드라마 같은 매력이 있어요. 제가 야구 하는 것만 봐도 잘 될 때는 거침없이 한없이 잘되다가도 안되면 그만두고 싶을 만큼 추락하기도 하거든요. 제가 올해 전반기에 정말 야구가 안 풀려서 어머니도 우시고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러다 대표팀에 운 좋게 발탁이 되면서 대회 가서 또 잘하고 하는 걸 보면 전개를 알 수가 없어요. 그런 게 꼭 막장드라마 같아요. 예고 없이 자기 맘대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잖아요. 그런 뻔하지 않은 점이 재미있어요. 축구는 뒤집힐 거란 생각을 못하는 점수차가 존재하잖아요. 3대0 되면 역전 못한다라는 확신이 생기고. 근데 야구는 그렇지 않아요. 이게 진짜 매력이죠.
기자들 앞에서도 많은 팬들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는 당찬 선수
윤대영의 활약으로 한국 대표팀이 승리할 수 있었던 첫 경기와 두 번째 경기가 끝난 후 그는 수많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기자들 앞에 서 본 것이 처음이었을 텐데 당시 기분이 어땠냐고 질문하자 “와 정말 그렇게 많은 기자 분들 계신 건 처음 봤어요. 근데 긴장은 안 했어요. 그런 자리에서는 프로답게 해야 하는 거 아니까. 사실 인터뷰도 혼자 집에서 이미지 트레이닝 하면서 연습도 했거든요. 그래서 말은 안 더듬었는데 자꾸 대답이 중복되지 않게 말하려니까 그게 좀 어렵더라고요.” 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대회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도 “제 기량보다 잘했다고 생각해서 그 점에선 없어요. 그런데 일본은 고시엔 대회 같은 거 하면 관중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국제경기였는데도 선수들의 기대보다 관중이 적어서 그 점이 아쉬웠어요. 전 오히려 팬 분들 많이 계시면 경기가 더 잘 되던데.” 라고 답하는 모습에서 대범함까지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십대답지 않은 의젓함과 대범함을 갖춘 윤대영은 내년부터 NC다이노스의 경기에서 만날 수 있다. 앞으로 그가 야구 팬들에게 보여 줄 멋진 플레이가 기다려진다.
-2편에서 송준석과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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