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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학교체육 ]

영어체육수업이 필요한가?




글/이태구(부천 상동고등학교 교사)



나는 영어체육수업을 왜 하고 있는가?’

200939년의 중학교 체육교사의 경험을 뒤로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부임을 하였다. 나에게 맡겨진 임무는 학생부의 생활지도 담당....빠져나갈 곳 없는 체육교사의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생활하였다. 아침 7시부터 나의 업무는 시작되었다. 학교폭력문제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흡연문제까지 나의 학생부 업무는 너무도 나를 바쁘게 만들었고, 내가 바쁘게 시간을 보낼수록 학교에서 난 꼭 필요한 교사가 되어갔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고 난 알았다. 학생부의 내 보직은 매년 담당교사가 바뀌었고, 모두 기피하는 자리여서 결국 새로 전입 오는 체육교사인 내가 맡게 된 것이라는 것을.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난 학교에 필요한 교사이긴 했는데, 학생부 생활지도 담당교사로서였다. 체육교사로는 난 존재감이 없었다. 1년이 지나가도록 아마도 내 체육수업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었다. 중학교 체육교사 시절과 비교해보면 내가 수업을 열심히 할수록, 학생들도 부담스러워하고, 담임교사들도 부담스러워하였다. 간혹, 영어선생님이 어느 반이 영어시간이 체육시간 뒤인데, 그 반이 영어성적이 꼴찌라고....(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간 체육교사가 나인 것을 알았다) 난 체육시간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체육교과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땀을 흘리지 않는 체육수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난 언제부터인가 ALT-PE라는 개념은 던져 버린지 오래다. 조금 춥다고 옷을 잔뜩 껴입고 나온 학생들이 스스로 두꺼운 옷을 벗고 수업에 스스로 임하는 모습을 보면 내 체육수업은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간혹 다른 학교에 공개수업을 보러가서 학생들이 땀을 흘리지 않는 체육수업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좋아’, ‘준비가 좋아’, ‘정말 혁신적이야라고 하면서 칭찬을 연신 늘어놓아도 나에겐 감동이 없었다. 아무튼 이런 생각을 가진 나에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체육교사 1년은 내가 이런 입시지옥의 중심을 달리고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을 주었다. 그리고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주변교과(?)의 한계를 넘어, 체육교과의 생존을 위해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영어체육수업을 하기로 하였다.

                                    ‘난 생존을 위해 영어체육수업을 한다’

올해 3월 난 인근의 다른 인문계고등학교로 전근을 왔다. 그리고 영어체육수업을 야심차게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2007 개정교육과정안에서는 ‘영어체육’을 체육수업에서 가능한 통합수업으로 예시한 것을 알았다. 이제 영어체육수업을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면 방어할 큰 변명꺼리가 생긴 것이다. 고시된 교육과정에서 한번 해보라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물론 영어몰입교육에 관한 논란은 끊임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논문은 물론이고, 비판적인 많은 논문들을 찾아 읽어보았다. 그리고 영어체육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영어몰입교육을 반대하는 주장들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지만, 학생들에게 영어는 필요한 것이 분명하고(물론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주장들도 많다) 그리고 난 체육교사로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내 살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2학기부터 내가 가르치는 1학년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1차시는 영어로 수업을 하였다. 한 주에 3차시 체육수업을 각반에서 진행하는데, 이번 2학기에서는 줄넘기와 배구가 수행평가 종목이여서, 우선 두 종목에 관한 영어 표현을 찾아 외우고(학생들은 내가 영어를 잘해서 그냥 하는 줄 알지만) 수업을 하였다. 물론 중요한 내용들은 나머지 두 번의 체육시간에 다시 우리말로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물론 당황스러운 날도 있었다. 어떤 반이 기본적인 연습을 끝내고 하필 영어체육수업 날 배구시합을 하는 날이었다. 진도가 그렇게 되다보니, 배구 시합규칙을 영어로 설명하고, 시합을 실시하였는데, 학생들이 규칙이 이해가 안돼서 시합이 잘 진행이 되지 않았다. 몇몇 학생들은 우리말로 다시 설명해 달라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물론 영어로 다시 설명했지만 말이다. 영어체육시간의 하나의 원칙은 교사인 나뿐만이 아니고 학생들로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특히 질문할 때는 영어를 쓰지 않으면 내가 질문을 무시(?)한다. 처음 9월 한 달은 서로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모두 적응해서 간혹 내가 실수로 영어체육수업시간에 우리말로 하면 즉시 이렇게 말한다. “You speak in English, Ben!". (Ben은 나의 영어이름이다.)

                                             ‘두 가지 변화와 내년의 기대’

영어체육수업을 하면서 내가 발견한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 공부 잘하고 신체활동에 소질이 부족한 여학생들이 체육시간에 할 일이 생겼다. 이 친구들은 다른 학생들의 통역사다. 다른 학생들, 특히 운동 소질은 있는데, 영어실력이 형편없어서, 교사인 나와 의사소통을 하고 싶은 학생들의 공식적인 통역사다. 이런 여학생들은 더 이상 체육시간에 본인에게 역할이 없는 지루한 시간이 아니다. 다른 남자 친구들이 먼저 와 말을 건넨다. 그 전에는 아무도 이 여학생들에게 말을 먼저 건네지 않았다. 체육시간에 단체경기를 할 때면, 같은 팀이라도 되기만 해도 짐으로 여겨지는 학생들이였다.
둘째, 체육교사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다. 난 9월 한 달 내내, 학생들로부터 왜 체육시간에 조차 영어를 해야되냐는 질문에 시달렸다. 체육시간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지,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말이다. 심지어는 타교과 동료교사들로 똑같이 말한다. 체육시간에 대한 그러한 기대들이 틀린지,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이 말이다. 어쨌든 학생들에게 난 별종 체육교사다. 그리고 학생의 날에 하루 종일 학생체육복을 입고 수업을 진행한 것과 맞물려 12월에 학교에서 발행하는 학교신문에 나갈 몇 안 되는 인터뷰 대상 교사로 뽑혀서 인터뷰를 하였다. 학생들은 이런 체육교사는 처음 보았단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민족사관학교에서는 체육교사 선발 시 영어체육진행이 가능한 사람을 선발하고, 영어체육수업을 진행한다고. 그래서 최소한 너희는 민족사관학교 수준에서 체육수업을 받는 것이니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이다.

내년도 1학기엔 3차시 중에 2차시를 영어체육수업을 할 예정이고, 2학기에는 3차시 모두를 영어체육수업을 할 예정이다. 비록 영어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이지만, 나의 영어체육수업에 대한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담임교사시간인 조·종례도 영어로 하면 어떨까하는 발칙한(?) 상상도 하면서 영어공부를 저녁마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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