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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학교체육 ]

스포츠: 기적을 만드는 비법서

 

/ 천항욱(배명고등학교)

 

   2012년 호주오픈 남자 테니스 경기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특히 결승전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와 나달(스페인)의 장장 6시간의 혈투는 세계 테니스사에 한 획을 긋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결승전의 경기가 워낙 치열했기에 준결승 경기가 쉽게 잊혀 질 만도 하지만 준결승 두 경기 역시 굉장한 경기였다.
그 중 첫 번째 준결승은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라파엘 나달(스페인)의 경기. 페더러와 나달의 경기는 전 세계 테니스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매치 중의 하나이다. 양 선수 모두 직전 세계랭킹 1위였으며, 모든 기술을 완벽히 구사하는 페더러와 페더러의 기술을 힘으로 압도하는 나달의 경기는 언제나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경기를 전문가들은 나달의 승리를 예상하면서도 페더러의 승리도 기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테니스계를 짊어져야 할 젊은 나달이 져도 안되고, 황제 페더러가 이렇게 권좌에서 멀어져 가는 것도 서운했기 때문일 것이다.  페더러의 노련함과 나달의 집중력이 맞붙은 준결승 경기는 예상대로 나달이 승리하였다. 나달은 경기 내내 페더러를 효과적으로 압박했고 경기를 주도했다. 반면에 페더러는 노련함을 앞세워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켜나갔다. 테니스는 점수 체계상 포인트를 더 많이 잃더라도 게임스코어는 동률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서비스게임은 40-40에서 이기고, 상대의 서비스게임은 0-40에서 내준다면 포인트는 5:8로 뒤지지만 게임스코어는 1:1로 동점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지키기만 한다면 적어도 지지는 않는다. 이 날의 경기 역시 페더러는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힘들게 지키고, 나달은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쉽게 이겼다. 전체 포인트는 나달이 앞서고 있었지만 게임스코어는 동률로 진행되었다.   
 

1세트는 페더러가 이겼다. 페더러의 선전에 아나운서는 전직 황제의 부활을 조심스레 예상하였다. 그러나 나달은 전직 황제의 부활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2, 3세트를 연달아 승리했다. 2, 3세트를 보면 페더러는 더 이상 나달을 괴롭힐 만한 전력을 갖추지 못해 보였다. 그럼에도 전직 황제는 노련함을 앞세워 중요한 고비의 순간마다 나달의 공격을 피해갔다. 나달이 계속하여 칼과 창을 휘두르면 패더러는 방패 뒤에 피했다가 중요한 순간에만 칼을 내밀어 나달에게 겁을 주는 형국이었다.  

하이라이트는 4세트였다. 기적이 두 번 이나 일어났던 이 4세트는 테니스 팬들의 뇌리에서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2, 3세트에서 페더러를 몰아붙이던 나달은 4세트 초반에도 여전히 무서운 공격력을 보여줬다. 그렇게 분위기는 기울었다. 나달이 조금 쉬어간다고 해도 페더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달은 잠시 페이스를 늦췄다.

전직 황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전까지 잘 구사하지 않던 백핸드 다운더라인을 이용하여 나달을 정교하게 공격했다. 나달은 저항했지만 전직 황제는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것으로 보였다. 전직 황제는 시종일관 수세였지만 역전을 위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직 황제의 노련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전직 황제는 나달의 서비스를 브레이크하면서 세트를 쟁취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었다.

시종일관 나달의 공격력에 기를 펴지 못하던 전직 황제는 단 한 번의 반격으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직 황제가 포착한 순간은 정확했다. 그리고 프로선수라면 실수 할 수 없는, 세트를 결정지을 수 있는 찬스가 전직 황제에게 찾아왔다. 기적이었다. 전직 황제는 침착하게 포핸드 스크로크를 날렸다. 공격은 완벽했다. 이 포인트만 성공하면 세트 스코어는 2:2, 경기결과를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때 그날 경기의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페더러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나달이 이길 수 없는 상황. 페더러는 침착하게 스트로크를 했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테니스 팬들은 페더러의 샷이 완벽했음을 확인했다. 나달은 코트의 오른쪽을 포기하고 왼쪽으로 뛰었다. 페더러가 친 공도 같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그 공은 나달이 잡을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아니, 잡더라도 역공은 불가능했다. 페더러는 이미 네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나달은 뛰었다. 나달의 뛰는 모습은 좀 억지스러워 보였다. 안타까워 보였다. 나달은 코트를 한 참 벗어난 경기장의 왼쪽 구석 끝에서 가까스로 라켓에 공을 맞혔다. 정말 간신히.

나달이 간신히 라켓을 갖다 댄 공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 떠오른 공은 페더러가 스매쉬로 처리하면 된다. 이때만 해도 기적이 아니었다. 높은 떠 오른 공은 생각보다 약간 길어 보였다. 바로 스매시로 처리하기엔 좀 긴 볼. 아웃같기도 하였다. 공은 페더러의 머리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페더러는 그 공을 아웃이 될 것으로 희망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공은 라인 위에 정확히 떨어졌다. 완벽한 샷을 날렸던 전직 황제는 당황했다. 급히 라인을 맞고 튀어 오른 공을 스매시로 공략했다. 전직 황제가 당황하여 급하게 처리한 공은 코트를 벗어났다. 전직 황제는 다 잡은 토끼를 놓쳤고, 나달은 위기를 벗어났다.
전직 황제는 더 이상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으며 나달은 그렇게 4세트에서 다시 역전하여 결승전 진출자가 되었다. 나달이 결승전 진출자가 되었지만 누구도 페더로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나달의 승리가 정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으로 보여지는 경기였다.

2012년의 첫 번째 메이저경기인 호주오픈의 첫 번째 준결승 경기 4세트에서 두 선수 모두 기적을 보여줬다. 두 선수가 보여준 기적은 우연이 아니었다. 두 선수 모두 기적을 만들었다. 그것은 그들이 기적을 만들어 낸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경기에서 기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었다. 그들은 연금술사였다. 그들은 어떻게 기적을 만들었을까?

전직 황제 페더러에게 나달은 부담스러웠던 존재였다. 최근에 그는 나달과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열세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불리한 체력적 여건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준비했다. 그는 자신이 승부를 걸 수 있는 상황을 기다렸다. 그리고 4세트. 그는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 자신이 여태껏 꺼내지 않았던 무기 페더러가 꺼내 들었던 무기는 백핸드 다운더라인이었다. 1, 2, 3세트에 백핸드로 다운더라인을 구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위닝샷으로의 백핸드 다운더라인은 4세트에 집중되었다.
를 꺼내들었다. 그가 선택한 상황, 그가 준비한 무기는 정말 유효적절했다. 그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4세트에 전세를 역전하였으며 4세트를 이길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경기가 종료되고 다시 그 상황을 떠올리고 있는 지금 어쩌면 그가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기적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달은 어떤 방법으로 기적을 만들었을까? 사실 준결승 경기에서 보여준 나달의 방법은 결승전에서도 똑같이 등장하였고 결승전에서는 5세트에 그 기적을 다시 만들어 보여주었다. 경기를 관전하는 내내 팬들은 나달의 체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달은 뛰어가도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은 공을 향해서도 계속 뛰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나달의 이러한 경기 운영을 비교적 젊은 선수의 패기라고 하였다. 많은 스포츠 중계에서 해설자들은 선수들의 체력이 낭비되는 것을 우려하는 발언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 뛰어가도 아웃이 될 것으로 보이는 공을 향해 선수가 뛰어갈 때, 야구에서는 경기장 밖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파울볼을 향해 선수가 뛰어갈 때, 해설자들은 노련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경기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체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식의 해설을 한다. 이러한 해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나달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뛰었지만 포인트를 얻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나달은 마치 자신의 빠른 발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포인트로 연결되지 않는 그의 노력은 오히려 상당한 체력적 손해를 초래하는 것으로 보였다. 공들인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정말 미미했다. 나달의 경기 운영은 커다란 그의 근육만큼이나 다소 미련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달이 기적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준결승전 4세트와 결승전 5세트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공들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기적을 만들어내는 선수였다. 테니스 선수들은 자신이 포인트를 얻기에 상당히 불리한 순간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불리한 상황에서는 체력을 섣불리 낭비하지 않는다. 마치 페더러처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서 찬스를 기다린다.

나달은 좀 달랐다. 미련하리 만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다 한 번 간혹 포인트를 획득한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테니스 선수들이 100만큼의 노력으로 100만큼의 포인트를 얻기를 바라고 그렇게 경기를 운영한다면, 나달은 200만큼의 노력으로 101정도의 포인트를 얻기를 희망하는 경기운영을 보였다. 이것은 너무 비경제적인 경기운영으로 비추어질 수 있지만 이번 호주오픈을 통해 그것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방식임이 증명되었다.

나달에게 체력이 더 소모되는 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달은 체력을 소모하면 할수록 101만큼의 포인트를 얻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계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선수들이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체력을 투자한 만큼 포인트를 얻고자 한다. 일선의 많은 지도자들도 체력을 투자한 만큼 포인트를 얻지 못하면 비효율적인 경기운영으로 생각했다.

나달의 방식은 다르다. 그의 방식은 경제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스포츠는 101을 얻는 선수가 100을 얻는 선수를 늘 이기기 때문이다. 101을 얻는 선수는 다음 기회도 주어지고, 챔피언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 경제적인 관점으로는 손해처럼 보이지만 실은 손해가 아닌 것이다. 나달은 101만큼의 포인트를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세계최정상의 선수가 되었다.

페더러와 나달이 기적을 만드는 방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선택과 집중이 아닐까? 페더러는 자신의 힘을 모아 상대를 한 번에 꺾고자 상황을 선택하고자 하였다. 나달은 남들이 포기하는 상황을 선택했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할 상황을 기다렸다. 그리고 선택한 그 순간에 집중했다. 페더러는 자신이 쓰지 않던 공격법으로, 나달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두 선수들은 항상 기적을 만들어 낸다. 다른 선수들이 100을 할 때 그들은 101을 한다. 그들은 항상 기적을 만들기 때문에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페더러와 나달을 통해 기적은 만들어 지는 것임이 확실해졌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기적을 만드는 연금술은 테니스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포츠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기적은 스포츠 상황에서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스포츠에서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상적 삶에서도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는 체육교사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교육적 소재다.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것, 기적을 만들어 내게 하는 것이 체육교사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체육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해 어떤 기적을 준비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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